부끄러움(羞惡之心)을 아는 사회
부끄러움(羞惡之心)을 아는 사회
  • 김태중
  • 승인 2007.04.20 2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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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몇 사람이 만나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중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원자폭탄, 수소폭탄보다 더 무서운 폭탄이 있는데 무언지 아느냐고.

 수많은 인명을 한꺼번에 앗아가고 도시를 한순간에 폐허로 만들 수 있는 폭탄보다 더 무서운 폭탄이 있다니...이 친구 말하길 원자폭탄, 수소폭탄보다 더 무서운 폭탄은 지탄(指彈)이라고 말했다. 주위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것이란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예로부터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을 세상에 내놓을 때 주위로부터 손가락질 받지않도록 행동거지를 조신하라고 가르쳤다. 언론에 종사하는 나로서는 누구보다 와닿는 이야기다. 일부 잘못된 기자들의 행태로 인해 기자라는 직업이 손가락질 받기 쉬운 직업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도 나도 모르게 지탄을 받을 일을 하지 않는지 뒤돌아 보곤 한다. 더욱이 남이 잘못했다는 비판의 글을 쓸 때는 내 허물은 없는 지, 내가 바라보는 시각이 옳은지, 또 다른 시각은 없는 지 등등을 살펴본다. 나아가 기사 안에 비판의 당사자가 변명을 할 수 있는 여지와 애정을 남겨놓곤 한다. 지금도 후배기자들이 들어오면 “기자이기전에 사람이 돼야한다”고 강조한다. 또 지탄받지 않도록 염치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잘못에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람으로서 양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원자폭탄과 수소폭탄보다 더 무서운 사건이 발생했다. 32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미국 버지니아공대의 총기난사 사건은 말 그대로 원폭보다 더 큰 충격을 우리사회에 던져줬다. 특히 1차 범행을 저지른 뒤 방송사에 보낸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양손에 권총을 들고 카메라를 노려보며 분노와 증오를 쏟아내는 범인의 모습에 전세계가 다시 한 번 전율하고 있다.

 동영상은 증오와 분노의 독설로 가득하다. 세상을 향해 총을 겨누는 모습, 칼을 자신의 목에 대는 모습 등과 함께 자신은 억울하게 고통을 받았으며, 자신의 범행을 타인을 위한 희생으로 정당성을 강변하면서 세상에 대한 적대감과 분노를 퍼붓고 있다. 희생자들에 대한 자책과 죄의식도 없다. 일말의 부끄러움이나 미안함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양심이라는 도덕적인 의식을 갖는다고 한다. 이것을 맹자는 사단설(四端說)로 설명했다. 사람의 마음은 본래 어질어서 어려운 남을 측은하게 여긴다. 또 본래 올바라서 의롭지 못한 일을 하게될 때는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남의 딱한 처지를 동정하는 마음을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 하고 불의와 불선(不善)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수오지심(羞惡之心) 이라고 한다. 여기에 사양할 줄 아는 예절(辭讓之心)과 시비를 가 릴줄 아는 지혜(是非之心)가 합쳐지면 인간의 네가지 본성이 된다는 것이다.

 맹자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사람을 동물과 차별 짓는 품성으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인간이 짐승과 다르다고 했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바로 ‘염치’다.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고 염치가 있기 때문에 지탄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모든 것을 ‘내 탓’보다는 ‘네 탓’으로 돌리면서 분노와 적개심을 표출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염치없는 사회는 서로에 대한 끝없는 증오를 불태우며 공멸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버지니아 총격사건도 그래서 발생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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