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가족정책 : 이상과 현실의 괴리
참여정부의 가족정책 : 이상과 현실의 괴리
  • 김흥주
  • 승인 2007.04.30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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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가 혼란스럽고, 경제가 어려우면 가족이 등장한다. 지난 70년대 신보수주의의 물결 속에 가족위기 논쟁이 치열했던 서구의 경험이, 그리고 지난 90년대 험난한 IMF 시절 “가족만이 희망이다”라고 목소리 높이던 우리의 경험이 이를 잘 보여준다.

 최근 들어 가족이 다시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TV 광고에서 가족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경제가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반증일 게다. 여기에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사상 최저인 1.08명으로 떨어지는 저출산 현상과 고령화 등 인구학적 현상까지 곁들여져 가족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정부의 가족에 대한 관심도 지대하다. 지난 2004년에는 가족해체 위기에 대응하려는 건강가족기본법이 통과되었으며, 2005년에는 가족정책을 총괄하는 여성가족부가 출범하였다. 사회적 관심과 더불어 정책적 관심까지 덧붙여진 것이다.

근대사회에서 개인의 보호는 일차적으로 시장과 국가를 통해 이루어진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회정책은 여기에 집중되어 있다. 시장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경제정책과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는 국가의 복지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시장과 국가 이외에 개인의 보호체계로 가족이 부각되고 있다.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1980년대 이래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담론은 복지체제의 변화를 강조하는데, 복지정책의 과도한 국가 및 시장 책임에서 벗어나 가족, 지역사회, 공동체 등 다른 다양한 공급주체들로 확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에게 안정적인 소득과 번영의 기대를 제공하던 시장은 고용유지와 임금 보전에 실패하고, 오히려 최근 ‘양극화론’으로 상징되는 대규모 빈곤과 사회적 배제를 양산하는 기제로 변모하였다. 시장의 불확실성과 비예측성으로부터 집합적 보호를 제공했던 국가 또한 ‘복지국가위기론’ 속에서 요보호 개인에 대한 적절한 보호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보호와 복지를 제공하던 이 두 제도가 삐걱거리게 되자, 균열과 공백을 채워줄 것이라는 기대는 가족에 집중되고 있다.

둘째, 가족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가족기능이 약화되자 정책적 지원을 통한 가족기능 강화가 사회의 지속ㆍ유지에 필수적이라는 진단 하에 가족을 정책 대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여기에 고령인구의 증가 및 출산율 저하라는 인구학적 변화가 가족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전제 때문에 인구문제를 가족에서 풀어나가려는 정책들이 속출하고 있다.

참여정부 들어 가족을 ‘정책’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부각시킨 이유도 이러한 배경과 맞물려 있다. 특히 최근 들어 가속화되고 있는 저출산율 문제와 고령화 사회라는 인구학적 변화에 대한 대응, 가족구성원들 간의 부양과 돌봄(care)을 과거와 달리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하려는 여성주의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가족을 통한’ 문제해결이라는 수순을 밟기 위하여 전방위적·중장기적 가족정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건강가족기본법에 적시된 제1차 건강가족기본계획(2006~2010)의 수립과 집행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가족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지원은 그동안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끝임 없이 주장해온 것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일단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기본계획에서 제시된 정책내용과 지향을 꼼꼼하게 검토한 결과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우선 과잉 기획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저출산과 고령사회라는 국가의 시급한 과제를 가족을 통해 풀어보려는 성급한 시도 때문에 가족의 변화와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가족에 대한 학계와 시민사회의 다양한 지적을 ‘정책’으로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정책의 실현가능성도 낮고, 이의 실효성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념지향과 현실의 괴리도 문제로 지적할 수 있었다. 부양과 돌봄 노동의 탈가족화ㆍ탈여성화를 지향하지만 현실의 가족부양체계는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가족에 대한 사회적 지원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의 가족주의는 가족에 의한 복지체제를 강조하고 있다. 가족정책의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부재도 문제로 지적할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건강가정지원법 개정 문제가 이를 말해 준다.

참여정부의 가족정책은 이런 점에서 함량 미달이다. 정치적으로 실현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부담 가능하며,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가족정책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광대 복지보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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