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 오일러
수학자 오일러
  • 김인수
  • 승인 2007.05.03 17: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일러 탄생 300주년을 맞이하여 현대수학의 기초를 만든 오일러의 생애를 더듬어 보고자 한다. 태생은 스위스이지만, 러시아의 페테르부르크에서 죽었다. 아버지는 그가 자신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길 바랐지만 수학자의 길을 선택했다. 그는 역사상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천재 수학자로 기억된다. 오일러는 평생 동안 500편 이상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는데, 연구 목록은 886항목이나 되며 현재까지 나온 그의 전집만 해도 75권에 이른다. 일생을 통해 그가 쓴 논문의 분량이 연평균 약 800쪽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많은 연구 업적으로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과학학술지들은 실을 글이 떨어질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데, 얼마나 그 양이 대단했는지 그가 죽은 후 45년이 지나서야 그의 저서들을 모두 출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18세기 후반에 발표된 수학에 관한 논문을 모두 모아 놓는다면 대략 3분의 1은 오일러의 펜에 의해 쓰여 진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오일러는 1707년 4월 15일 스위스의 바젤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신학 분야로 발을 디뎠지만 진짜 적성은 수학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학에 흥미를 가졌던 칼뱅교의 목사인 아버지는 그에게 수학의 기초를 가르쳐 주었다. 오일러가 겨우 20세 때인 1727년 표트르 대체가 설립한 페테르부르크 학술원에 관계 하고 있던 두 친구 다니엘과 니콜라스 베르누이가 러시아 학술원에 오일러를 위한 자리를 확보했다. 오일러는 다니엘이 바젤의 수학 교수직을 얻은 후 곧바로 러시아를 떠나서 학술원의 수학주임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다정다감하고 친절했던 오일러는 학문에 있어서도 그 친절함을 빼놓지 않았다. 자신은 뛰어난 기억력과 암산력의 소유자였지만, 정작 책을 집필할 때는 독자들이 수학에 대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전제 하에 내용을 이어갔다. 그가 지은 저서를 보면 모두 명료하고 알기 쉬우며, 수학적인 기호를 잘 선택해서 기초적인 수학적 개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수학적 지식으로 누구를 놀라게 하기보다는 제자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더 좋아했다. 하지만 업적의 양이나 질을 따져보면 그가 얼마나 부지런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오일러의 책 중에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 ‘무한소 해석 개론’이란 책이 있다. 이 고전적인 수학에 관한 책은 유클리드의 ‘원론’에 비교될 만한 것이다. 또한 오일러는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발명한 미적분학을 고도로 발전시켰고, 페르마가 남겨 놓았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함으로써 정수론을 하나의 분야로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수학의 각 분야마다 중요한 정리들은 오일러의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 많다. 오일러의 표수, 오일러의 다항식, 제1,2종 오일러 적분, 오일러 상수, 오일러 방진, 오일러 함수 등 일일이 다 열거할 수도 없다. 심지어 우리가 흔히 보는 축구공 속에도 오일러의 ‘다면체 정리’라는 공식이 숨어 있다. 정오각형 12개와 정육각형 20개로 이루어진 32면체인 축구공은 미국의 건축학자인 벅민스터 풀러가 1940년대 고안한 지오데식 돔과 모양이 같다고 한다. 지오데식돔은 전통 건축물보다 훨씬 적은 재료를 사용해서 더 큰 공간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둥 하나 없으면서도 매우 튼튼한 특성을 지닌 돔은 오일러의 다면체 정리를 건축에 응용한 것이다. 오일러는 육각형 또는 그 이상의 다각형만으로는 볼록다면체를 만들 수 없고, 삼각형이나 사각형 또는 오각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한 오각형으로 만들어진 다면체는 어떤 모양이거나 상관없이 반드시 12개의 오각형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오일러의 다면체 정리 공식을 이용하면 일일이 여러 도형을 갖다 붙이지 않고도 필요한 도형의 모양과 개수를 쉽게 알아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오일러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수학기호를 많이 고안해내기도 한 수학자이다. 오일러가 만든 가장 유명한 기호는 자연로그의 밑을 나타내는 상수 ? 이다. 지수(exponential)라는 단어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하는 ?가 최초로 인쇄되어 나온 책은 1736년에 발행된 오일러의 ‘역학’이라는 저서였다. 그밖에 허수의 단위 i와 수열의 합 ∑, 함수를 f(x)로 나타내는 것은 모두 그가 고안해낸 수학기호들이다. 또 삼각형의 변을 나타내는 알파벳 소문자 a, b ,c라든지 이것들에 대응하는 각을 나타내는 대문자 A, B, C를 비롯하여 삼각형의 내접원과 외접원의 반지름, 그리고 삼각형의 둘레 길이의 2분의 1 등을 각각 r, R, s로 나타내는 것도 모두 그가 쓰기 시작한 것들이다.

 원주율을 나타내는 그리스 문자 π도 처음 사용한 것은 17세기 때의 월리엄 존스였지만, 오일러에 의해 표준적인 표기로 굳어졌다. 수학에서 가장 아름다운 식 중의 하나로 꼽히는 ‘?iπ+1=0’이라는 수식만 놓고 보아도 오일러가 이 식에 사용된 개념의 표기를 모두 만들어낸 셈이다.

 이밖에도 오일러는 해석학, 미분방정식, 특성함수, 방정식론, 수론, 미분기하학, 사영기하학, 확률론 등의 수학 분야뿐만 아니라 물리학 분야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고, 또한 변분계산법과 복소함수론을 만들기도 했다. 영혼이 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진지하게 증명하는 등의 일로 인해 일각에서 오일러의 수학적 비실제성을 비판하는 소리도 있지만 이것이 그의 위대한 업적의 빛을 바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