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 김태중
  • 승인 2007.05.0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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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의 많은 아버지들이 5월은 가장(家長)에겐 잔혹한 달이라고 말한다.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21일 부부의 날 등 가장이 신경써야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느 행사 하나 그냥 아무날도 아닌 것 처럼 넘어갈 수 없는 데다 작은 선물이나마 준비를 해야만 한다. 항상 박봉을 쪼개 빠듯하게 생활하고 있는 월급쟁이들로서는 5월을 무사히 넘기기란 간단치 않은 일임은 사실이다. 번듯한 직장에 넉넉한 연봉을 받지않는 대부분의 가장들은 5월이 아니더라도 항상 먹고사는 것이 걱정이다. 그래서 친구나 선후배들을 만나면 ‘어떻게 살아’, ‘뭐해먹고 살아’가 인사다. 누구나 하루 3끼 먹고 살면서도 항상 먹고사는 걱정이다.

 너도나도 먹고사는 걱정에 세태가 야박하다. ‘돈되면 뭐든지’ 훔치는 생계형절도가 기승을 부리고도 하고, ‘돈 되는 곳엔 어디나’ 거액의 배팅도 마다하지 않는 투기심리가 팽배하다.

 전북경찰청에 따르면 올들어서 절도사건은 1천78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1%가 늘어났다. 최근에는 극심한 경기침체의 여파로 생계형 절도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고철값 상승과 맞물려 전선과 통신선, 교량난간, 맨홀뚜껑 등 공공시설물들조차 돈이 된다는 이유로 잇따라 사라지는가 하면 자신의 학교에서 물건을 훔친 대학생이 검거되기도 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계 곤란에서부터 학업 유지, 사업 자금 마련 등 다양하나 한마디로 먹고살기 위해서란다.

 먹고 사는 걱정에 허망한 꿈도 그린다. 돈이 돈을 불러오는 시대에 돈 되는 곳엔 투기자금이 대거 몰리고 있다. 4월 초 청약열풍을 불렀던 인천 송도의 한 오피스텔 청약에 뛰어든 전북 출신은 줄잡아 5천명을 웃돈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청약한 사람은 29만4천458명인데 이중 전북 출신이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2위의 청약을 기록했다. 평균 분양가 4억원을 감안하면 단순 계산으로 5천명이 2조원 규모의 자금동원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돈 되는 곳에 자금이 몰리는 현상은 주공의 전주 효자4지구 상가 분양에서도 확인됐다. 지난달 27일 13개 점포 분양신청을 마감한 결과 무려 340여 명이 대거 운집, 30대 1에 가까운 경쟁률을 나타냈다. 건전한 투자도 있겠지만 한 탕 하자는 식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심리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돈이 있는 사람은 있는 사람데로 없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데로 돈 걱정을 짊어지고 산다. 사실 행복의 조건을 들여다보면 돈이 앞선 가치로 등장하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돈이 도덕적 가치의 기준이라고까지 말한다. 한화그룹 최고 경영자의 폭행사건만 봐도 그렇다.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돈이 문제인 것이다.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란 말이 있다. 항산이 없으면 항심이 없다는 말로, 생활이 안정되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견지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맹자의 양혜왕편 상(上)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 속담에도 ‘쌀 독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다. 또 ‘사흘 굶어서 도둑 안되는 자 없다’는 말도 있다. 돈에 대한 도덕적인 가치가 흔들리고 있는 이때 치국의 첩경으로 민생문제인 국민들의 생활고를 책임질 정치지도자를 생각해 본다. 아울러 어렵더라도 올해 5월만큼은 정말 가정의 달로 기억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박봉이라도 쪼개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가족과 스승 등에게 따뜻한 마음의 정을 전했으면 한다.

<본보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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