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 지역 먹거리로 해야 한다
학교급식, 지역 먹거리로 해야 한다
  • 김흥주
  • 승인 2007.05.2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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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내 집단급식소 위탁을 맡은 외지업체 대부분이 도내에서 생산된 지역 먹거리를 외면하고 있다는 기사(전북도민일보, 5. 15.)를 보면서 지역 먹거리 정책과 복지에 관심을 가지는 연구자로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단지 안전한 먹거리 확보 차원이 아니다. 지역 먹거리 체제(local food system)만이 미국의 거대 농기업이 주도하는 글로벌 푸드시스템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는 먹거리 선진국에서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슬로우푸드 운동이 일상화된 이탈리아의 경우 지난 2000년, 정부와 몇몇 광역 지자체들이 기초자치단체로 하여금 학교급식을 포함한 집단급식에 자기 지역에서 생산된 유기농 식재료를 포함시킬 것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에서는 2004년 현재, 학교급식과 지역 농민들을 연결시켜주는 프로그램이 22개주 400개 학군에서 시행중에 있다. 동부 아이비리그 명문 대학들 또한 지역 먹거리만을 사용하는 학교식당을 거의 대부분 운영하고 있다.

영국 런던은 2006년 런던 시장이 주관하고 ‘런던 푸드’라는 민관협의체에서 추진하는 먹거리 부문 전략보고서를 발표하였다. 이 보고서는 런던 시민의 지역산 먹거리 사용을 증진하고, 지자체가 지역 먹거리를 공공부문의 집단급식에 활용할 수 있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런던 주변 농민의 생계유지를 돕고, 시민들에게 안전하고 영양가 높은 먹거리를 공급함으로써 보건의료 비용(아토피나 비만 같은 식원성 질병)을 절감하고자 한 것이다. 나아가 지역 농산물의 가공ㆍ유통 및 외식업체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도시 빈민에 대한 안전한 먹거리 지원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복합적인 정책이 제시되고 있다.

이들 선진국의 지역 먹거리 정책은 우리에게 두 가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첫째 이들 대부분의 국가는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푸드시스템에서 자국의 먹거리 안전과 농업분야를 자치단체와 시민, 그리고 지역농민의 단합된 힘으로 지켜나가려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도시민의 경우 비록 비용이 더 드는 지역 먹거리지만 안전과 지역 농민을 위해 기꺼이 구입하고 있다. 농민들도 어려운 유기농 생산이지만 도시민과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기꺼이 힘든 생산과정을 감수한다. 지자체 또한 학교급식을 포함한 공공영역의 집단급식에 지역 먹거리 사용을 의무화한다. 나아가 도시 빈민과 노인, 장애인 등 복지차원에서 생계를 보장해야 하는 취약계층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른바 먹거리복지(foodfare)의 실천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지역농업을 보호하고자 하며, 이는 WTO 체제에서도 예외로 인정하는 부분이다.

둘째, 그 동안 먹거리 부문이 시장에 맡겨짐으로써 식중독 등 각종 사회문제를 야기해왔다는 점을 주시하여 여기에 정책적으로 적극 개입하고, 이를 민관 협의체 차원에서 추진하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런던이나 캐나다 토론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지역먹거리정책협의회’가 그 예이다. 협의회 활동의 핵심은 먹거리 문제에 대한 공공부문 개입을 통해 건강, 환경, 교육, 사회복지, 지역경제 등과 같은 다층적인 공적 목표를 다루는 것이다. 한 마디로 먹거리 만큼은 시장을 넘어, WTO 체제를 넘어 공공성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 가? 2005년 9월 전북 급식조례안이 ‘지역산 농산물 사용’을 명시했다는 이유로 WTO 규정위반으로 대법원에서 무효 판결된 이후 지자체 차원의 지역 먹거리 사용 제도화가 표류하고 있다. 이 틈새를 노려 학교급식을 포함한 집단급식소 위탁을 맡은 외지 업체 대부분이 시장 논리에 따라 값 싸고 구매하기 쉬운 식재료를 역외(域外)에서 대거 구입하고 있다. 나아가 수입 농산물도 학교급식에 사용할 수 있는 내용의 서울학교급식조례도 마련될 예정이다(YTN, 5.22.).

이와 같이 공공급식 조차 시장에 맡겨진다면 농업은 황폐화될 수밖에 없다. 지자체에서도 지역 먹거리를 외면한다면 농민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더구나 한미 FTA로 인해 물밀 듯이 들어올 거대 농기업의 수입농산물을 생각한다면 지역 농업의 미래가 참담할 수밖에 없다. 해법은 한 가지, ‘지역 먹거리를 지역에서 소비하는’ 소위 로칼푸드 시스템을 하루빨리 뿌리내리는 길밖에 없다.

<원광대 복지보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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