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의 약속'
'3일의 약속'
  • 김대일
  • 승인 2007.06.0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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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 제가 돌아왔습니다.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지난 33년의 세월 동안 늘 저는 어머니와 함께 있었습니다.

 어머니 ! 저는 3일의 약속을 지키는 아들이기를 무척이나 원했습니다.”

 이 글은 미국 교포 의사인 정동규씨의 ‘3일의 약속’ 이란 수기에 나오는 절규다.

 정동규씨는 ‘3일의 약속 전우회’ 회원으로서 휴전 후 고려대 의과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에서 심장전문의로서 생활하면서 ‘통한의 33년 모정의 비망록’이란 부제가 붙은 ‘3일의 약속’ 이란 수기를 발간 하였다.

 그는 어머니와의 3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미국 시민권을 얻어 지난 83년 운좋게 북한을 방문할 수 있었다.

 33년 만에 극적으로 두 누이들과 해후 할 수 있었지만은 그토록 보고싶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는 망연자실하여 어머니의 묘소 앞에서 절규한다.

 정동규씨를 비롯한 함경북도 출신 청년학도 156명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군이 철수하게 되자 1950년 12월 9일, 가족과 3일 만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성진항을 떠나던 철수선(LST)에 몸을 실었다.

 156명의 청년학도들은 전쟁이 장기화 할 조짐을 보이자 공산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지키고자 50년 12월 22일, 23연대 수색중대에 현지 입대하여 강원도 가칠봉 전투와 김화지구 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워, 10여명은 화랑무공훈장을 받았고 대다수가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었다.

 2004년 4월, 23연대 부대 동산에 국가보훈처와 철원군의 지원, 그리고 회원들의 성금으로 ‘3일의 약속 전우회원’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함북3일전우충혼비’를 세우고 매년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해 춘천에 근무 할 당시 ‘3일의 약속 전우회원 ’ 들의 추모식에 참석하여 노병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3일의 약속 전우회원들은 지금은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56년 전 나라를 지키기 위해 현지 입대하던 당시의 애국심을 한시도 잊지 않고 회원 모두가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무심한 세월 속에 많은 전우들이 가족과의 3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이제는 56년 전 혈기왕성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지만 “만약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비록 몸은 늙었어도 조국을 위하여 한 목숨 바칠 각오가 되어있다”고 이야기하는 노병들의 눈에는 광채가 서려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약속을 한다. 약속은 지켜야 하고 지키려 노력하지만 ‘3일의 약속 전우회원들’의 약속처럼 불가항력에 의하여 지킬 수 없는 약속도 있다.

 정동규씨는 다행히 미국 시민권을 얻어 3일의 약속 후 33년이 흐른 후에라도 가족을 만날 수 있었지만 나머지 전우들은 56년이란 긴 세월이 지나도록 가족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만날 기약조차 할 수가 없다.

 이것이 어디 ‘3일의 약속 전우회원’만의 아픔일까, 바로 나의 아픔이자 천만 이산가족의 아픔이요, 우리 민족의 아픔이 아니겠는가?

 이산가족 상봉은 1985년 서울과 평양의 교환방문으로 처음 이뤄진 뒤 15년 만인 2000년 남북정상회담 합의로 재개 되었지만, 지난 15차까지 남북 이산가족 상봉자수는 3천841가족에 불과하다고 한다.

 1988년 이후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가 12만4천800여명이라고 하는데 지금처럼 한 차례 100여 명씩, 1년에 두 차례 정도 상봉을 하여서는 3일의 약속이 수 백년이 되어도 이루어 질 가망이 없다. 전시성 행사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그나마 북한은 걸핏하면 트집을 잡아 이산가족 상봉 약속을 어겨 천만 이산가족의 가슴에 못을 박곤 한다.

 제25회 ‘이산가족의 날’에는 이산가족들이 ‘혈육 이산의 아픔을 미끼로 쌀과 비료를 챙기는 북한에 분노한다’ 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북한은 이산가족의 아픔을 헤아려, 더 이상 억지를 부리고 생색을 내려 하지 말고 이산가족 상봉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정부도 이산가족 소식 확인과 편지 교환 나아가 자유로운 상봉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전주보훈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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