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맞이의 어제 오늘을 생각한다
단오맞이의 어제 오늘을 생각한다
  • 최승범
  • 승인 2007.06.1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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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판본 ‘춘향전’은 이도령과 성춘향의 첫 만남을 단옷날로 정하였다. 그리고 이 날을 ‘천중지가절 (天中之佳節)이라고 했다. 이 말은 단오절의 이칭이기도 하다.

 한자어 단오(端午)가 아닌 우리말은 ‘수릿날’이라 하였다. ‘동국세시기’에는 이 말의 말밑이 나와있다. ‘이 날 쑥잎을 따다가 짓이겨 맵쌀가루 속에 넣고 푸른빛이 나도록 반죽하여 떡을 만든다. 수레바퀴 모양으로 만들어 먹기 때문에 수렛날(수릿날)이라 한 것’이라고 했다. 일설에는 쑥잎이 아닌 수리취의 연한 싹이나 잎을 뜯어 섞어서 먹는 절편으로 하여 ‘수리취떡날(수릿날)’을 말하기도 한다. 나의 어린시절 남원 고향에선 둥근 모양으로 얄팍하게 만든 수리취떡을 먹었다. 또한 이날엔 익모초를 즙내어 먹기도 했다. 여름철 더위를 먹지 않고 특히 어린이들은 자라배를 앓지 않는다는 어른들의 말씀이었다. 한 종발을 마시는데도 몹시 거역스러웠다. 단옷날의 풍습을 좀더 널리 보게 된 것은 전주에서 대학을 다닐때였다. 단옷날이면 덕진연못 주변에서 큰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저 소나무들이 사라졌지만 저때만 해도 휘영청 큰 소나무들이 연못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소나무에 낭창거린 그네를 매고 여인네들이 하늘 높이 솟는것도 볼 수 있었고 다른 한켠에선 남정네들의 씨름판이 벌어진 것도 볼 수 있었다. 뿐인가 연못 일대엔 난전(亂廛)이 서고 북장구 소리, 노래 소리가 건지산 가달산에 펑퍼지다가 반공에 솟기도 하였다. 연못의 북쪽 수문께는 차일이 처지고 그 안에선 반나의 여인들이 머리를 감기도 하였다. 연못가엔 창포가 많아 그 수문으로 흐른 물에 목욕하면 부스럼이 나지 않고 편두통도 앓지 않는다고 했다.

 ‘전주부사(1943)’에는 5월의 연중행사로 ‘단오제’를 들었다. 덕진 호반의 단오잔치는 그 유래도 깊었던 것인가. 나의 대학시절에 본 전주의 단옷날은 시민들이 온통 덕진 연못께로 쏠렸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저 때, 가람 선생께 들은 속설 하나. ‘전주의 단오맞이는 물,비,매,도적, 저 거시기 무엇 등 다섯가지를 맞이하기도 한다’고 했다.

 오는 단옷날엔 덕진시민공원일대에서 ‘단오예술제’가 열린다고 한다. 자연도 세상사도 많이 달라진 오늘이다. 오늘 우리들의 단오맞이에선 무엇을 챙기고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단옷날에 만난 이몽룡과 성춘향의 만단설화는 접어두고 이들의 정신만을 되챙겨 속편 ‘춘향전’을 구상해 보면 어떨까. 망상이랄지 모르겠다.

<고하문예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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