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농업이 산다
농정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농업이 산다
  • 김흥주
  • 승인 2007.06.20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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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0년대 이후 WTO 체제가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세계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한국 농업의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더욱이 지난 4월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농업의 어려움은 더욱 거세어질 전망이다. 외부 환경의 변화도 문제지만 내부의 농업구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특히 농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농정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규모의 경제를 중시한 결과 나타난 ‘농업 내부의 양극화’는 농민 계층의 갈등구조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이와 같이 농업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위기의 해법 찾기가 전사회적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해법은 크게 세 가지로 제시되고 있다.

 첫째, 농업구조조정과 선진화된 농업기술을 바탕으로 농업경영의 합리화를 이루어 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영농규모의 지속적인 확대를 통해 선진국과 경쟁이 가능할 정도로 규모의 경제 달성을 꾀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농민들의 지속적인 생산성과 품질의 혁신을 통한 벤처농업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 해법은 주로 정부와 공공 연구기관, 기업관련 연구기관에서 제시하고 있다.

 둘째, 친환경농업을 통해 안전한 먹거리와 고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하여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소규모 지역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을 통해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범위의 경제(economy of scope)에서만이 승산이 있다는 논리다.

 셋째, 도시와 산업 부문의 풍요를 바탕으로 농촌과 농민을 ‘도와주어’ 위기를 벗어나게 하자는 것이다. 이 해법이 바로 최근 들어 각광을 받고 있는 ‘도농교류’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도 이러한 해법을 묶어서 소위 ‘맞춤형 농정’이라는 새로운 정책으로 농업과 농촌의 경쟁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

 농업의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활로를 찾으려는 시도들은 분명히 의의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난 90년대 이래 농업을 살리기 위한 수많은 시도들이 별다른 성과 없이 표류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아니 오히려 농업을 살리기 위한 정책들이 농업을 위기로 몰고 가는 상황까지도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농업 위기의 본질을 잘못 인식하고 있어 농정의 지향점이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농정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들과 내부의 농업구조만의 문제인 것으로 여기고 시행되어 왔다. 그러나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농업의 위기는 먹거리를 둘러싼 사회체계 전반의 위기이자, 농식품을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 모두의 문제이다. 특히 최근 들어 가속화되는 농업의 세계화는 농민들의 존재 기반을 위협할 뿐 아니라, 안전한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소비자들의 권리까지 침해하고 있다. 인간 생존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먹거리가 고도로 상품화되고, 사회ㆍ지리적 거리가 증가하면서 ‘사회’의 식민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조작(GM) 농산물의 급증, 조류독감, 광우병, 김치 파동, 수산물의 말라카이트 그린 검출 등 식품과 관련된 위험은 일회적 사고가 아니라, 과도한 상품화와 거대기업들이 지배하는 대량생산ㆍ대량소비의 글로벌 푸드시스템이 가지는 구조적 문제를 반영한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 농정의 지향점은 ‘생산’을 어떻게 할 것 인가에 두기 보다는 ‘생산과 소비의 연결망’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두어야 한다.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대전환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농업과 먹거리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계의 대안농업 추세를 보더라도 식품안전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곧 새로운 먹거리 체계의 모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국의 경우 1980년대 중반 광우병의 발생이 소비자의 식품안전에 대안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고, 이러한 소비자의 변화가 생산체계의 변화를 이끌어내 유기농업과 로칼푸드 중심의 대안농산물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식재료의 높은 자급률이 슬로우푸드 운동이라는 대안농업과 대안사회운동을 만들어내고 있다. 일본의 농업재생 계획도 한 국가 차원의 안전한 먹거리 생산과 소비의 시스템을 만들어 생산자 입장에서는 가치보전, 소비자 입장에서는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서 대안모색의 핵심은 생산자를 보호하고, 소비자의 식품안전을 보장하면서 지역농업의 활성화로 식재료의 다양성 확보와 자급률을 높여가는 새로운 먹거리 수급모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대안 모델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때, 농업은 경제논리에서 벗어나 사회논리, 나아가 생명논리 차원에서 존재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농업은 생명인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협상이 오늘부터 다시 시작돼 양국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1차 타결 이후 이 협정이 한국농업에 미칠 영향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한국 농업의 미래가 암울하다’라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이번 협상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심정은 절박하다. ‘생명’ 패러다임에서 농업을 바라보고, 협상에 임해줄 것을 절실하게 기대한다.

<원광대 복지보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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