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의 선택
정동영의 선택
  • 김윤태
  • 승인 2007.07.05 16: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열린우리당이 사분오열되면서 노무현 대통령을 추종하던 집권여당은 해체의 위기에 직면하였다. 창당 주역이었던 정동영, 김근태 등 전직 의장들이 탈당한 것은 충격적이다.

 특히 정동영 전의장의 정치적 선택은 의미심장하다. 1996년 야당인 국민회의에 참여하여 전북 전주에서 전국 최다득표로 정치를 시작했던 정동영은 중요한 기로에서 대담한 결단을 보여주어 주목을 받았다.

 그는 2001년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인 권노갑 전의원의 퇴진을 요구하며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쇄신을 주도하여 파란을 일으켰다. 2002년 대통령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패배했지만 끝까지 경선에 참여하여 대선 승리에 큰 공을 세웠다. 민주당의 분당 위기에서는 열린우리당의 창당을 주도하고 2004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 그의 정치적 위상은 여권의 제2인자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금 정동영 전의장의 지지율은 5% 이하이며, 호남에서도 손학규 전 경기도 지사의 뒤를 잇고 있다. 항상 승승장구하고 전도유망했던 정동영 전 의장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

 먼저, 정동영 전의장은 자신의 지지 세력을 충분히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2003년 민주당의 분당 위기에서 좀 더 당내 반대파를 포용하여 이끌어가려는 정치적 리더십이 부족했다. 역사를 보아도 대부분 당내 반대파를 설득하기가 더 힘든 법이다. 미국 민주당에 처음으로 당내 예비선거(프라이머리)를 도입한 맥거번 상원의원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당시 급진적 학생과 민주당의 풀뿌리 활동가의 지지를 받아 당내 개혁을 주도하여 1972년 대통령후보가 되었다. 하지만 맥거번은 개혁에서 소외된 상층 지도부의 반발과 비협조로 본선에서 무참하게 패배했다.

 반면에 1994년 영국 노동당의 당수가 된 토니 블레어는 사회주의 국유화 강령을 당헌에서 없애기 위해 무리하게 표결을 하는 대신, 무려 1년 동안 보수파와 노동조합 간부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늙은 노동조합 간부들은 젊은 블레어를 무시하거나 냉대했지만, 그는 참을성을 가지고 겸손하게 상대방의 말을 경청했다. 결국 그는 노동당의 좌파와 우파를 아우르는 리더십을 발휘하여 1997년 총선에서 압승했다.

둘째, 정동영 전의장은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이후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 과거에 보여주었던 개혁적 이미지는 오래 가지 않았다.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메시지이다. 대중은 이미지에 관심을 갖지만, 결국 투표장에서는 메시지를 선택한다. 유권자의 가치에 맞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제시하는 정치인만 성공할 수 있다.

 최근 정동영 전의장은 민주당의 분당 과정에서 지지자들의 여론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저지른 대북송금 특검, 부동산 정책의 실패, 대연정 제안, 무능한 측근 인사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지 않았다고 시인했다. 다 옳은 반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성은 모두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먼저 정동영 전의장이 정치 지도자로 다시 서기 위해서는 민주개혁세력의 대통합을 이루는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과거를 불문하고 현실적이고 온건한 진보노선을 수용하는 모든 정치세력을 결집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를 이끌어가는 소신을 담은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현재 그가 제시하는 ‘평화’와 ‘경제’는 시대정신을 대변하는 빅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너무 추상적이다. 그리고 최근에 제안한 중산층, 중소기업, 중용과 통합, 그리고 중통령의 공약도 여전히 애매모호하다.

 정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부격차와 양극화 해소를 원하는데,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탈지역주의’를 위해 대연정을 주장한 노무현 대통령의 오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현재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고용, 복지, 교육, 의료 등 ‘삶의 질’을 높이는 정치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운하 공사’를 통해 이를 이룰 수 있다고 기대하지 않는다. 토건국가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대선에서 유권자는 미래를 보고 투표한다. 새로운 지도자는 정보화와 세계화가 이끄는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국가의 전략과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교육을 최우선으로 강조하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더 좋은 의료 서비스와 사회복지를 제공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평화를 위해 남북 화해협력과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는 효과적인 수단을 제시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지도자는 메시지로 말해야 한다.

<건양대 사회학 교수, ‘한국의 전망’ 편집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