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의 오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칠면조의 오류’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 장병수
  • 승인 2007.07.11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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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에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에 나설 각당 대선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되면서 각 대권주자 사이에 검증 문제가 언론을 통해 쟁점화 되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서도 대선 후보자들에 대한 철저하고도 공정한 사전 검증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정치인이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자신의 정치철학과 정책비전을 발휘할 기회를 갖고자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반면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나라 운명을 좌우할 지도자를 한 표의 투표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야 말로 가혹하리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후보자에 대한 사전 검증은 그가 속한 조직, 정책, 사생활 등 구체적이며 폭넓게 전개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못했을 때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떠넘겨질 뿐만 아니라, 국가 경쟁력 역시 심각한 손상을 입기 마련이다.

 국가 지도자에 대한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부작용은 여러 나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써 독일의 치욕적인 지도자 히틀러는 2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인류사에 씻을 수 없는 엄청난 오점을 남겼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전후 세대들은 아버지의 세대와의 단절을 시도하면서 나치즘에 대한 반성과 국가 지도자에 대한 경각심을 끊임없이 강조하였다.

 1945년 태생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라는 영화 감독은 독일 사회에 남아있는 파시즘의 잔재를 영화를 통해서 공격했다. 그는 60, 70년대 독일 뉴저먼시네마 세대로써 동시대의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나치즘에 대한 반성과 산업화한 독일 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것이 새로운 독일 영화의 나아갈 길이라고 믿었다.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74)는 멜로 드라마 어법으로 인종 차별주의 유산이 남아 있는 독일 사회를 비판한 파스빈더의 대표작이다. 특히 국가 지도자에 대한 선택의 중요성을 역대 수상들의 사진을 통해서 강한 메시지를 전한 영화 <마리아 브라운의 결혼>(1978)은 우리 앞에 닥친 대선 후보자에 대한 검증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다.

 영화는 클로즈업 된 히틀러 사진이 굉음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1943년 마리아와 헤르만 브라운의 결혼식은 공습으로 엉망이 된다. 전쟁에 끌려간 헤르만이 러시아에서 실종되자 마리아는 흑인인 미군 빌에게 매춘해 삶을 이어간다. 그 와중에 남편 헤르만이 돌아오고 마리아는 빌을 살해한다. 그러나 헤르만이 대신 감옥에 들어가고 빌에게 익힌 능숙한 영어 덕에 마리아는 사업가 오스발트의 경제적, 성적 파트너가 된다. 하지만 마리아는 남편에겐 사랑을, 오스발트에겐 섹스만을 제공한다고 믿고 자신이 그 관계를 조절하는 주체라고 생각한다. 마리아는 자신이 삶의 주체라고 생각해 왔지만, 실제로 그의 삶은 오스발트와 헤르만의 계약에 의해 설계된 것이었다. 마리아가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는 영화의 마지막 순간, 부주의하게 켜 둔 가스 폭발에 집은 삽시간에 폐허로 변하고, 그 순간 라디오에서는 1954년의 독일과 헝가리의 축구경기에서 독일이 우승했다는 아나운서 멘트가 흘러나온다. 멘트가 이어지는 가운데 갑자기 ‘후지필름’이라는 상표가 이중영상으로 드러나면서 엔딩 장면에서 관객은 역대 서독 수상의 음화사진과 당시 수상의 양화사진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후지필름’이란 상징은 자본주의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관객을 감정이입으로 몰고 가지 않고, 일종의 ‘거리두기’를 유도하여 전쟁의 아픔을 생각하게 하는 장치다. 특히 피스빈더가 영화의 처음에 등장하는 히틀러의 사진과 끝을 장식하는 역대 서독 수상들의 사진을 같은 무게와 시선으로 처리하고 있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라인강의 기적을 창출한 눈부신 경제 재건에도 불구하고, 서독 사회가 과연 파시즘적 과거의 그림자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파스빈더는 지도자의 선택에 따라서 국가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을 강력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우리는 불과 6개월 뒤에 국민에게 꿈과 비젼을 보여줄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지난 여러 차례의 대선결과에서 보았듯이 이른바 ‘칠면조의 오류’(당선 후 집권과정에서 대선 공약과는 전혀 다른 정치행위) 현상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선주자에 대한 검증은 가혹하다고 느낄 정도로 철저할수록 국민에게는 오히려 좋으며 검증의 범위 또한 넓을수록 좋을 것이다.

<영화평론가,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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