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한 천년의 사랑, 단야
애틋한 천년의 사랑, 단야
  • 채수창
  • 승인 2007.07.12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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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전통이 있는 각 지방을 방문할 때마다 그 지역이 낳은 훌륭한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충북 단양의 유명한 기생이었던 두향(杜香)도 그런 사람중 한명이다. 단양 군수이었던 퇴계 이황을 사모하여 수절하다 퇴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한강에 투신하였다는 애절한 사랑이야기이다. 전북 김제에도 두향 못지않은 사랑과 심청이 못지않은 아버지에 대한 효성이 농축되어 있는 단야(丹若)라는 여인의 이야기가 있다. 다른 여인과 달리 너무 오래전 이야기라서 충분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생생하게 전해지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1,217년전 통일신라 원성왕때 옛 백제지역에서 급한 전갈이 왔다. 갑작스런 늦태풍으로 인하여 추수를 앞둔 벼가 엉망이 되었고, 특히 ‘벽골제’ 둑방마저 붕괴되어 지역 민심이 흉흉해졌다는 보고였다. 원성왕은 화랑 원덕랑을 파견하여 지역 민심을 파악하는 한편, 김제 태수 유풍에게 저수지 보수공사를 서두르도록 지시하였다.

 벽골제는 높이가 4.3m, 길이가 3km를 넘어 많은 마을사람들이 노역에 동원되어야만 하였다. 태풍으로 인한 피해로 먹을 것이 없어 굶는 판에 사람들을 강제로 동원하자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공사가 늦어지면서 추위까지 닥쳐오자 사람들의 원성은 점점 높아져만 갔다. 태수는 사람들의 불만을 진정시켜기 위한 비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공사를 서두르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까지도 뺏아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린 것이다.

 한편, 태수에게는 얼굴도 곱고 마음씨도 비단결 같은 딸 단야가 있었다. 단야는 서라벌에서 온 원덕랑에게 흠뻑 빠졌고 이를 눈치챈 태수도 이들 두사람을 맺어 주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원덕랑에게는 서라벌에서 기다리는 약혼녀 월래가 있었다. 월래는 원덕랑이 떠나면서 약속하였던 날짜가 훨씬 지났음에도 돌아오지 않자 불안한 마음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김제로 원덕랑을 찾아 왔다.

 태수는 마침 서라벌에서 온 월래가 떠올랐다.

 월래를 보쌈하여 벽골제 용추, 즉 소용돌이 속에 밀어넣은 후 자기 딸 단야를 용왕께 제물로 받쳤다고 소문을 내면 마을사람 어느 누구도 아무런 불만을 내색하지 못할 것이며, 나중에 단야는 원덕랑을 따라 서라벌로 보내면 1석2조 아닌가. 이런 음모를 꾸미는 것을 눈치챈 단야. 단야는 월래가 억울하게 죽는 것도, 공사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도 모른채 할 수 없었다. 결국 자신의 목숨을 바쳐 사랑하는 원덕랑이 약혼녀 월래와 행복하게 살도록 하고, 죄없는 사람을 죽이려는 아버지의 잘못도 막고, 공사를 빨리 마쳐 마을사람이 편안하게 살 수있게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날 밤 단야는 월래의 방에서 잠을 자는 척하다 보쌈되어 벽골제 소용돌이에 던져진다.

 나중에 이를 안 마을사람들은 단야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매년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장수에 논개, 부안에 매창이 있다면 김제에는 단야가 있다. 김제시에서는 단야 사당을 짓고 강승완 화백에게 의뢰하여 단야의 초상화 및 희생 과정을 그림으로 그려 보존하고 있다. 강승완 화백은 매년 벽골제에서 단야국제미술전을 열어 단야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천년의 애틋한 사랑을 되살리는 행사를 개최한다.

 아~ 벽골제에서 단야와 같은 향기있는 여인을 만나고 싶다.

<김제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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