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소
엄마와 소
  • 천판욱
  • 승인 2007.07.2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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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엄~마 ~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찔레꽃’ 유행가 가사다.

 그 노래를 듣노라면 왜 그리 슬프고 엄마 생각이 나는지!

 나는 시골에서 살며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드려 풀베기, 지게질하기, 퇴비 만들기 등을 해보며 농사의 힘든 점과 질곡의 한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나의 엄마는 몸도 약하시나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시는 모습이 ‘엄마는 소와 같다’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생각해 보면 너무나 엄마에게 힘든 세월의 연속이셔서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요즈음 엄마의 손을 만지거나 발을 씻어드리면 나의 숙인 눈에서 감사인지 고마움인지 측은해서인지 눈물을 흘리면 엄마는 “괜찮다. 늙으면 다 쭈그렁 팽이가 되는 것이란다” 하시면서 나를 위로하신다.

 소는 어려서 엄마의 젖을 먹고 자라다가 조금 크면 코뚜레를 하고 더 자라면 엄마와 헤어질 때 “음메~ 음메~” 하고 울며 눈물 흘리는 모습이 시집 갈 때 누나 같다.

 새로운 집에 가서 살며 새로운 가정도 꾸려 가며 엄마를 얼마나 그리워할까 생각하면 참 안쓰럽다.

 평생 일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우리 인간의 식용이 된다.

 껍질은 가죽으로. 뿔은 악기로. 뼈는 환자에게. 살은 고기로. 내장은 순대로. 머리는 국밥으로 우리에게 모두 주고 가는 고맙고 가여운 짐승….

 나의 엄마도(아니 우리 모든 엄마들이) 우리를 가슴속에 고이 길러주셨고 어린이 때 가슴에 안고 젖을 먹이시고 추우면 옷 입히고 더러운데 씻겨 주시고 울면 안고 재워 주시다가 아프면 밤 새워 주신 우리의 엄마.

 이런 나의 엄마가 평생 일에 지쳐 온 몸이 너무 약하시더니 2년 전에 시력이 아주 나빠지시고 목에 이상이 생겨 음성도 잘 안나와 수술을 하러 들어가시는 모습에 ‘나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이제 엄마가 소처럼 돌아가시려나’ 생각하니 가슴이 멎어버린 듯하여 너무 울었던 그 날.

 ‘아, 아 엄마 가시면 안 되요’ 희미한 나의 신심이 살아났는지 나는 병원 지하실 기도 처에 들어가 울며 간구하기를 ‘불효한 이 자식이 엄마가 수술 후 건강하시면 꼭 봉양하겠습니다.’ 하고 서원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되어 내 생애 처음으로 엄마를 위해 칠 일간 간호하며 엄마와 깊은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네가 어려울 때인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잘 마쳐 지금도 참 기쁘고 대견하다” 하시는 말씀에 “엄마가 농사철은 농사일로 농한기에는 장사로 우리 가정을 그리고 나의 학비를 버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으며 맛있는 음식도 못 드셨어도 엄마는 나의 공부하는 모습에서 기쁘고 자랑스럽고 힘든 일도 해내시는 힘의 원천이 되었나 보다.”생각하니 학생의 본분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한다.

 지금도 기쁘고, 대견하시다는 말씀에 ‘아! 나는 엄마의 가슴을 딛고 일어섰고, 어깨를 박차고 달렸으며, 엄마의 손을 잡고 여기까지 성장했으나 앞으로도 엄마의 남은 사랑과 엄마의 남은 촛불의 빛을 따라 가리라.’ 생각하니 참 부모의 길이란 힘들고 어려우며 ‘눈 감을 때까지 자식 걱정이다’ 라는 말이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도 엄마처럼 ‘나의 자녀에게 깊은 정을 주었고 정신적 사랑의 등대가 되었으며 어두운 길을 가다가 무서워 울 때에 한줄기 빛이 되며 지친 어깨를 토닥거려 주고 갈증으로 헤매 일 때 오아시스가 되어 두려움과 걱정을 떨쳐버리고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오르는 한 마리의 새가 되도록 해주었나’ 하고 반문해보면 엄마의 반절도 못한 것 같아 엄마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이 더욱 깊어진다.

<군산산북초등교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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