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충돌인가, 문명의 공존인가
문명의 충돌인가, 문명의 공존인가
  • 김윤태
  • 승인 2007.08.02 1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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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과 세계질서의 형성>이라는 책에서 냉전체제가 붕괴된 후 서구와 비(非)서구의 경계로 새로운 세력권이 형성되어 ‘문명의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걸프 전쟁’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그의 예측은 2001년 발생한 ‘9·11 테러’를 서양과 이슬람의 충돌로 보게 하면서 각광을 받았다. 특히 미국과 소련 사이이 주도한 냉전이 사라진 뒤 테러리즘을 새로운 적으로 간주하는 미국 보수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부시 행정부는 테러리즘을 소탕하기 위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2001년 미국이 알카에다를 섬멸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을 때는 국제적 지지를 상당히 받았다. 테러 공격을 당한 미국에 대한 동정 여론도 있었다. 하지만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시작했을 때는 매우 다른 반응이 나왔다. 미국은 이라크의 후세인 정부가 알카에다와 연결되었다는 증거나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아프카니스탄 전쟁에 동조했던 독일, 프랑스 등도 반발했다. 결국 미국이 유엔을 거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파병을 결정하자 일방적으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는 국제적인 비난이 커졌다.

서방국가와 이라크의 전쟁을 ‘문명의 충돌’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미국이나 영국이 기독교 문명을 대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라크가 이슬람 문명을 지도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이 본능적으로 각자의 문명권에 결속을 호소하는 면이 있지만, 모두가 그들의 호소대로 반응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기독교 문명인 프랑스와 독일은 이라크전쟁에 동참하지 않았다. 동아시아를 봐도 같은 유교 문화권이지만, 중국, 일본, 한국의 외교관계는 그리 원만하지 못하다.

결국 문명의 충돌이란 강대국이 추구하는 국제정치의 이해관계를 감추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정치를 ‘문명권의 충돌’로 해석하는 것은 가상의 적을 설정하는 서구 사회의 이분법적 가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적이 사라지자 미국은 무슬림 테러리스트, 또는 이슬람 문명권을 가상의 적으로 설정하려고 한다. 이슬람 문명은 기독교 문명과 다르고 폭력적이고 위험하다는 정보를 지속적으로 반복해 주입한다. 이에 대해 독일 철학자 하버마스는 미국에서 ‘문화투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18세기 이후 유럽이 아랍을 식민지로 만들기 시작하자 이슬람 세력들은 향락과 물질을 숭배하는 서양문명을 거부하고 원시 이슬람교의 순결한 정신과 엄격한 도덕으로 돌아가 이슬람 사회를 재생하자고 주장하였다. 이슬람의 원리와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이 운동을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슬람 원리주의 또는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말은 모두 서방세계에서 만든 것이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이슬람 부흥운동’이란 용어를 선호한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이슬람 율법을 철저히 준수할 뿐만 아니라 반외세, 특히 반서양문명, 반미를 주장한다.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쫓겨나자 이슬람 급진주의가 더욱 지지를 얻었고 다른 나라에까지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슬람 문명은 기독교와 한 뿌리이고, 기독교보다 더 폭력적이지 않으며, 위험하지도 않다. 종교의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들에서 갈라졌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이슬람 교리는 전쟁을 선동하지도 않는다. 서방세계는 이슬람교를 폭력적인 종교라고 한다. ‘한 손에 코란, 한 손에 칼’이란 말을 ‘이슬람교를 믿지 않으면 죽여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말은 원래 ‘전장에서도 경전의 가르침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실제로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것은 이슬람 문명권이 아니라 기독교 문명권이었다. 물론 알카에다는 테러단체이다. 하지만 알카에다나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과 같은 극단적인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이 모든 이슬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서양의 산업문명과 정치제도는 동양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동시에 서양의 제국주의는 문명화라는 미명 아래 동양을 지배하고 수탈했다. 이제 동양은 서양의 단순한 추종자도 피해자도 아니며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문명을 만들기 원한다.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를 가진 동양과 서양이 서로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깊은 이해와 협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다른 문명권의 국가, 사회조직, 개인들 사이의 대화와 공존이 인류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또 다른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을 막기 위한 인류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건양대학교 사회학 교수, ‘한국의 전망’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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