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SHOW)를 해라?'
'쇼(SHOW)를 해라?'
  • 황석규
  • 승인 2007.08.0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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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인의 생명을 두고 쇼를 하고 있다. 정부가, 미국이, 그리고 정치권이 쇼를 하고 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2007년 여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의 쇼

장영달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포함한 4당의 원내대표가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를 해결하겠다고 큰소리치며 미국으로 떠났다. 한국의 국회 대표단이라면 적어도 부시 대통령이나 체니 부통령을 움직이는 정도의 백악관 고위 관계자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을 만나 한국민의 입장을 전했거나 융통성을 발휘해 달라고 요구했어야 했다. 나아가 한국인 인질과 탈레반 수감자 맞교환 문제는 한.미 외교부의 조용하고 은밀한 공조하에 양해를 바탕으로 움직이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적절했다. 그러나 간신히 만난 하원외교위원장에게 머퉁이만 맞고 왔다. "톰 랜토스 하원외교위원장은 한국 국회방미대표단에게 '내 손자가 인질로 잡혀 있더라도 협상은 안 된다'고 말했다. 혹을 떼려다가 혹만 붙이고 돌아온 격이다. 대대적으로 나서서 자신들의 정치적 행보만을 선전하는데 골몰한 나머지 미국으로 하여금 공식적이고 원칙론적인 입장을 밝히도록 만드는 역효과를 낸 것이다. 국제 외교에 속하는 일을, 그것도 수십 명의 인명이 왔다 갔다 하는 매우 민감한 과제에 대하여 국내에서 막무가내로 치받던 습성으로 휘저으며 자신의 명함 내밀기에 골몰 하다니 정말이지 어이가 없다. 게다가 그런 국제적 망신살로 대한민국의 얼굴에 먹칠하고 돌아와서 사과는 커녕 미국 정부에 한국민의 염원을 전달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자평 하다니 저들의 정신세계가 심의 의심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21명의 생명에 대한 손톱만큼의 책임감이 있다거나 21명 생명 가족의 고통을 이해 하였더라면 결코 해서는 않 될 SHOW를 하고 온 것이다.

정부의 쇼

정부가 가짜 탈레반과 접촉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시간을 허송세월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부의 무능이 해도해도 너무 해서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그 귀중한 시간에 사태 전모를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데서 해결책을 찾고 있으면서 정부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가족들과 국민들을 안심시킨 결과는 싸늘한 주검이다. 참다못한 가족들이 나서서 아프가니스탄 현지로 가 어떻게든 조금이나마 희망의 불씨를 살려보려고 하는데 정부는 앵무새처럼 앉아서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만약 대통령의 아들, 딸이거나 정부 고위 관계자의 자식들이라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하고 미친듯이 움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어떻고 아프가니스탄 현지 정부가 어떻고 간에 자식들의 생명을 위해서는 지구 끝까지라도 가서 도움이 된다면 그 누가 되었더라도 찾아갈 것이다.

미국의 쇼

탈레반의 탄생배후에는 미국이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1980년대 소련군의 침공에 대항하던 남부지역의 소규모 반군단체 탈레반은 미국과 파키스탄의 지원하에 소련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이 빈 라덴을 옹호하자 미국은 탈레반을 축출하고 친미정부를 수립하였다. 즉,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악마라고 말하는 대상이 빈 라덴이고 빈 라덴을 옹호하는 탈레반 또한 그 범주에 속한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은 이번 피랍사태가 어떤 결말을 맞기를 원하는가?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하였으나 테러가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테러의 위협을 가중시켰다. 미국은 대테러 강경원칙을 천명하면서도 미국인 납치문제가 발생했을 때에는 원칙보다 생명이 중요하다며 타협과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견지해 왔다. 그러한 미국이 금번 피랍사태에 대해서는 우리정부와 탈레반의 직접적인 접촉을 막고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강경책을 고수하도록 하는 이유가 인질이 미국인이 아니고 유럽인도 아닌 저 먼나라 동양인이라는 사실이 결정적인 이유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부시 행정부가 이번 사태의 비극적 결말을 유도하여 부시행정부의 최대실정인 대외정책에 대한 여론을 환기시켜 자국내 공화당 정책의 입지를 회복하려는 의도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인간의 생명을 두고 시도되는 은밀한 SHOW가 있다면 이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천인공노할 일이다.

<전북생명의 숲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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