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주년을 되새겨보는 광복절
62주년을 되새겨보는 광복절
  • 김정근
  • 승인 2007.08.15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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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일제의 강점으로부터 해방된지 제 62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날이다. 1945년 오늘 우리는 그 지긋지긋한 일제의 사슬에서 풀려나 조국광복의 기쁨을 맛봤다.

그 세월 무려 36년 만이다. 이 해방의 기쁨과 감격을 그 어디에 비할 것인가.지축을 흔드는 만세소리. 전국 방방곡곡에 메아리쳤다. 70대 이상 노인들에게는 가락가락 상기되는 그날의 감격이다.

영원히 이어나갈 이 나라에 단 하나 씻을 수 없는 회한을 남긴 일제 36년. 우리는 아직도 그 여한을 풀지 못하고 있다. 그 감격과 기쁨도 한 순간. 그날부터 세상은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멀쩡한 땅에 38선이 처지고 미군과 소련군이 38선을 기점으로 남북으로 분할 점령했다. 국토분단의 시발이다. 국가는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좌우 이데올로기와 연일 이 나라를 살벌한 비극속에 몰아 넣었다. 그러나 더 큰 재앙이 왔다. 해방 5년 만에 6.25 전쟁이 터졌다. 동족상잔의 비극이 이 나라 곳곳에서 희대의 아픔을 안고 전개됐다. 나라는 깨지고 산천은 간 곳 없다는 ‘국파산 하재오’다.

일제가 아니었다면 38선이 생길 까닭이 없다. 일본의 관동군이 만주 흑룡강성 북쪽 소만 국경선에 포진하고 있지 않았다면 소련군의 만주지역 구실이 없었을 것이다. 이는 루즈벨트와 스탈린의 얄타협정이 엄청난 오류를 범했다.

루즈벨트의 오판이 2차 대전 후 극동 아시아의 판도를 바꿔놓은 계기가 되었다고 2차 대전사는 적어놓고 있다. 일본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한반도 문화사가 원천적으로 존재할 까닭이 없다.

물론 우리의 민족적 비극 6.25도 없었을 것이다. 신사 참배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을 보면 분통이 터진다. 그래서 우리의 8.15 62년사가 아직도 원한으로 남는다. 다시 한번 역사적으로 새겨보면 광복절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지긋지긋한 식민지 통치로부터 해방되어 국민주권을 되찾은 것이며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것을 기념하고 경축하는 날이다. 정부가 수립된 다음해 10월 1일에 8월 15일을 국경일로 정했다. 이날은 1910년 8월 29일 국권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36년 간 일본의 비인도주의적인 강제노동 강제징병과 강제징용에 시달리다 살아난 날이다.

일본이 강제적으로 우리의 말과 글을 탄압하고 일본식으로 창씨 개명까지 했으나 끝까지 버텨 문화민족의 명예를 다시 찾은 날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해방은 일본이 단순히 연합국에 패배해서 된 것이 아니라 민족독립운동과 선열들이 고취한 투쟁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해방은 자주 독립을 선언한 3.1 운동을 비롯해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애국자들의 투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쓰라린 역사의 한을 품고 있지만 떳떳하게 세계의 반열에 올라 서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을 보며 일본이 아시아의 판도를 자주위주로 이끌어 나가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올해를 민족의 대전환기로 삼아 부끄러운 국치일을 올바로 인식하고 기록하여 다시는 이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역사적 과제를 다시한번 다짐하고 실천해야 한다. 해방을 민족통일과 조국통일로 이끌지 못하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로 갈라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

민족분열과 국토양단의 책임을 통감하고 6.25 전쟁의 동족상잔과 쓰라리고 슬픈 희생의 역사에 대한 반성을 해야한다. 이제 평화적으로 통일이 우리민족의 과제라는 것을 다시한번 다짐하고 남북통일을 과감하게 추진하기 바란다. 그리고 신세대들이 적극 나서 우리 것을 지키고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길때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전주시게이트볼 홍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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