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형 인간 필요할까
트랜스포머형 인간 필요할까
  • 한성천
  • 승인 2007.08.16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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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아젠다는 무엇일까?’

한 두 개로 압축해 답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주위의 모든 현상과 사물들이 아젠다이기 때문이다. 경제회생과 자녀교육, 종교분쟁, 여기에 연말 대선과 얽힌 각종 억측까지 난무하고 있다. 어제의 지인이 경쟁자로 바뀌고, 이념의 선마저 자유롭게 넘나든다. 모두가 자신과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유형의 사회현상을 단편적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극장가를 떠들썩하게 한‘트랜스포머’란 영화장면이 오버랩 된다.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신하는 변화무쌍한 트랜스포머. 어릴적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했던 그런 모습이 성인이 된 지금 영화스크린에 비춰지는 것을 보면서 트랜스포머는 현실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생가이 여기까지 미치자 필자는 ‘지금의 사회가 트랜스포머형 인간을 요구하고 있는 것 아닐까’하는 자문에 빠져든다.

스크린속 변신로봇의 활약에 대한 시각적 착란도 잠시, 머릿속은 `트랜스포머형 인간은 어떤 형일까`란 생각에 모든 게 뒤엉킨다.

트랜스포머란, 사전적 의미로 변압기를 말한다. 전자기 유도 작용을 이용하여 교류 전류 전압이나 전류의 값을 바꾸는 장치를 말한다.

필자는 트랜스포머형 인간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모든 것이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간직하고 있듯, 트랜스포머형 인간도 두 가지 성질을 가지고 있다.

먼저 긍정적 의미는 자신을 통해 자신은 물론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체적 인간을 의미한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공부해 남주냐, 다 너를 위한 거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는 바꿔야 한다. ‘공부해 남줘야지 너만 위한다면 뭐하러 공부하냐?’로.

주위를 둘러보자. 공부잘해 연구개발자가 되거나, 기업가, 또는 행정가가 됐다고 가정하자. 적게는 자신의 생활이 상대적으로 윤택해진다. 넓게는 그의 사회활동은 사회적 부가가치를 창출해 다른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사회를 발전시키게 된다. 결국 공부해 남줘야 한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반면, 변신을 의미하는 트랜스포머형 인간은 ‘변신의 귀재’란 뜻으로도 통한다. 자칫 기회주의적이고 이념정립이 안된 상태에서 상황에 따라 자신만을 위한 그런 유형의 인간이 사회를 움직인다면 우리사회는 불안정한 사회, 원칙이 통용되지 않는 ‘기회사회’로 전락할 우려가 높다.

그럼에도 미래사회는 트랜스포머형 인간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변화의 현상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를 10년 단위로 잘라 분석해보자.

지금은 2007년. 컴퓨터와 통신은 개인은 물론 가정, 기업, 금융, 의료, 국가, 세계를 거미줄처럼 엮어놨다. 디지털이 지배하고 있는 형국이다. 1997년은 외환위기로 국가부도위기에 직면했다. IMF를 통해 위기를 넘겼다. 또 1987년은 ‘88올림픽’을 유치, 열악했던 사회간접시설을 크게 확충하는 계기가 됐다. 이때 만해도 아날로그사회였다. 20년이 지난 디지털시대인 지금과는 구조적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럼 10년후인 2017년은 컴퓨터가 진화해 로봇화사회가 시작될 것으로 미래과학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컴퓨터가 그러했듯이 로봇이 가정까지 파고들 것이란 전망이다. 그리고 20년 후인 2027년은 로봇은 인간생활에 있어 분리할 수 없는 ‘트랜스포머 사회화’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다.

트랜스포머형 인간에 대해 모두가 생각해야 할 때가 다가온 셈이다.

<문화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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