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불감증이 불러온 학력위조 파문
도덕불감증이 불러온 학력위조 파문
  • 황석규
  • 승인 2007.09.06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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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위조가 온 나라를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광주 비엔날레 감독 신정아 교수로부터 시작한 이번 파문은 유명한 건축 디자이너 이창하, 공연계의 큰 손 김옥랑 동숭아트센터 대표, 국민배우 윤석화, 얼굴과 입담으로 먹고사는 유명 연예인을 거쳐서 이제는 공무원들에게까지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다음 차례는 누굴까’하는 질문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공공기관, 대학, 기업체들의 학력조회가 빗발치고 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머지않아 전 국민의 학력을 검증해야만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다. 이제 ‘거짓학력 자수기간’을 정해 당사자들의 고해성사만이 이번 사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학력위조가 들통난 유명인들은 대부분 고의성이 없는 실수로 부풀려진 학력으로 이득을 본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어쩔 수 없이 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되었다는 변명과 해명이 대부분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묵묵무답으로 일관하거나 잠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학력위조는 양심불량의 산물>

그렇다면 과연 학력위조는 과연 용서해줄 만한 실수인가 아닌가하는 점부터 구별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학력은 사람을 판단하는데 대표적인 잣대로 사용되어 왔다. 좋은 학력은 단순히 성적만 좋다는 것뿐만 아니라 성실성과 인내심까지 우수하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포함한다. 그래서, 노래나 연기를 잘하는데다가 좋은 학교까지 나왔다면 당연히 호감도는 높아진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존경받고 안정적인 직업 중의 하나가 대학교수이다. 그래서, 학력위조 파문이 대학에 집중되고 있다. 권위와 더불어 생계가 확실히 보장되는 대학교수가 많은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기 때문에 현장 경험은 많은데 학력이 받쳐주지 않을 경우 위조유혹을 받게 마련이다.

그러나, 학력위조는 초라한 학력을 속이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만 승부하고 있는 일반인들에게 불이익을 주게 된다. 거짓으로 학력을 사거나 고친 사람들은 학벌주의 또는 학연주의 폐혜의 희생자가 아니라 이용자들이다. 가짜 학력으로 성실한 사람들의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심불량에서 비롯된 학력위조는 보통 거짓말과 같이 단순히 용서하고 지나칠 일이 아닌 것이다.

<간판보다는 도덕성이 우선해야>

유명 인사들의 학력을 속이는 사태를 두고 학벌중심인 후진적 한국사회가 그렇게 내몰았다는 반성론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능력을 중시한다는 미국의 유명대학 교수도 학력을 위조했다는 뉴스를 보면 반드시 사회 탓만은 아니지 않나 싶다. 문제는 위조와 변조를 해서라도 과시하려는 도덕불감증이 더 근본적인 핵심이다. 학력위조는 적당주의와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하는 도덕적 불감증의 적나라한 표현이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잘못을 고치기 위해서는 그 잘못을 깊이 반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와 함께, 학력과 더불어 현장에서의 창조적 능력과 업적이 중요시 되는 현대 사회에서 이를 검증하거나 평가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거짓말에 대해 유난히 관대하다. 정치, 경제, 연예계 등 유명인들의 거짓말과 변명이 하도 많아서 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이 일상화되어 버렸다. 유명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온 사람들이 학창시절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자랑스럽게 말할 때, 보통 학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떳떳하게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학벌문제 해소이지 않나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학력으로 인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하여 각종 자격증을 따거나 학위를 받기 위하여 밤을 새워 공부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학력 위조에 대한 그럴듯한 변명이나 해명보다는 진실한 사과가 중요한 이유이다.

<전북생명의 숲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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