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늘 가위날만 같아라'
'더도 말고 늘 가위날만 같아라'
  • 김생기
  • 승인 2007.09.10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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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린 끝에 맞이하는 '한가위'라 그런지 더욱 반갑다.

처서 백로를 지나면서 청명한 하늘과 서늘한 바람이 눅눅해진 마음을 씻어주고 있다. 바야흐로 '가을의 한가운데 아름다운 계절'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듯 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 연휴 기간 동안 해외여행지로 가는 항공권이 바닥났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제 추석은 '명절'의 의미보다는 '긴 연휴'라는 의식으로 바뀌어가는 모양이다. 더구나 올 추석은 주말을 포함하면 5일간 휴일이고, 게다가 부모님을 위한 추석 효도여행 상품도 나왔다고 하니 이제 설, 추석과 같은 명절은 전통적인 풍속에서 변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인 듯 하다.

그러나 '추석'은 여전히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이다.

비록 그 의미가 엷어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추석 풍속은 현대 사회에 있어서도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해외여행이 뉴스가 되고 있으나 여전히 추석 전후 고속도로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귀성, 귀경행렬은 여전하다. 양팔에 선물 꾸러미를 껴안고 귀성하는 사람들과 추석 끝나고 부모님이 싸주신 음식 등을 바리바리 싣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고향집을 떠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아직도 한국인의 DNA속에는 추석이란 것이 공통으로 자리하고 있는 듯 하다.

예로부터 추석은 설과 단오와 함께 우리 민족의 3대 명절의 하나로 쳤다. 추석이 되면 무더위도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철로 접어든다. 이때 무렵에는 넓은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 빛으로 물들며 온갖 과일이 풍성하다. 기근으로 허덕이던 예전에는 추석 즈음 먹을 것들로 넘쳐 나 마음마저 훈훈하고 행복했었다. 아궁이에 장작불 지피고 스멀거리며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들이 동네 어스름을 낮게 둘러싸면 전이며 부침이며 차례상 음식을 만드는 냄새가 코 끝을 자극하고, 동네 아낙들은 마을 어귀마다 멍석 펴 놓고 송편을 빚으며 수다꽃을 피우고, 코흘리개 악동들은 여기저기를 뛰어 다니며 웃음꽃들이 만발하곤 했다.

'더도 덜도 말고 늘 가위날만 같아라'

조선후기 김매순이 쓴 '열양세시기'에 나오는 말이다. 1년 동안의 세시풍속을 기술하면서 '추석'의 넉넉함을 이른 것인데 이보다 '한가위'를 잘 표현한 것은 없어 보인다. 속담에도 '근친길이 으뜸이고 화전길이 버금이다' 라고 할 정도로 추석을 전후한 여인네들의 친정나들이는 큰 기쁨이며 희망이었다. 조선시대 이야기지만 현대인이 근친하는 정서가 그때보다 뒤진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나.

매번 맞이하는 추석이지만 그때마다 소망하곤 한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상살이 속에서도 해마다 추석과 같은 명절은 자신과 세상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준다. 일상에 지쳐 강퍅해진 마음을 다스려보고 관심밖으로 내몰린 지친 이웃들에게 조금이나마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게 되기를 올 추석 즈음에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어느 해라고 힘들 지 않았던 적이 없는 우리 일상들이지만 '추석의 넉넉함'에 취해 그 동안 돌아보지 못했던 이웃과 친족도 찾아 뵙고, 조상에게도 감사할 수 있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넉넉한 한가위가 되길 기대해 본다.

<대한석유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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