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진객, 구절초(九折草)
가을의 진객, 구절초(九折草)
  • 양천수
  • 승인 2007.09.18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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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진객, 구절초(九折草)를 아십니까?

영화 ‘웰컴투 동막골“에서 조금 모자란 여인으로 등장하여 강원도 사투리와 함께 순정한 이미지를 잘 살려냈던 배우 강혜정이 머리에 꽂았던 하얀 꽃이다. 머리에 꽃을 꽂으면 왜 모자란 사람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강혜정이 꽂은 구절초는 순박하고 청초한 이미지를 위해서 제대로 선택한 꽃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눈물의 시인 박용래는 구절초를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이라고 노래했다.

가을이 시작되면 우리 산야에 피어나는 대표적인 가을꽃으로 10월 초부터 중하순에 이르기 까지 진한 꽃내음과 함께 피어나다가 서리가 내리고 찬바람이 불면서 가을과 함께 스러져 가는 다년생의 꽃이다.

구절초는 5월 단오에 다섯 마디이지만 가을 9월 9일(음력)이 되면 아홉마디가 된다하여 구절초(九折草)라고 불리는가 하면, 음력 9월 9일에 꺾는다하여 구절초라고도 한다. 불가(佛家)에선 어머니의 사랑이 깃든 식물이라 하여 선모초(仙母草)라고 부르며, 특히 여성들에게 좋다고 전해진다. 또한 선인(仙人)들이 먹는 음식이라 하여 봉래화(蓬萊花)라 불리는 등 그 이름은 용도와 효능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불리며, 그 꽃말은 순수의 상징이다.

음력 9월9일에 채취하여 엮어서 매달아 두고 여인의 손발이 차거나 산후 냉기가 있을 때 달여 마시는 상비약으로 쓰이며, 또 구절초 꽃잎을 말려서 술에 적당히 넣고 약 1개월이 지난 후에 먹으면 은은한 국화 향과 더불어 ‘강장제, 식욕촉진제’ 가 되는가 하면 웰빙 바람이 불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각종 건강보조 식품과 천연 미용재료는 국내의 최대 매출을 올리는 히트 상품으로 떠오르는 등 구절초의 인기는 상한가를 누리고 있다. 쑥부쟁이?개미취와 함께 들국화로도 불리고 있으나 이들은 향기가 별로 없는 반면 구절초는 진한 향기를 가지고 있다.

왜 사람들은 화려한 아름다움에 대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낄까. 불안 때문일 것이다. 화려하게 아름다운 것을 쟁취하려면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쳐야 한다.

구절초에 애틋하게 마음을 주는 것은, 많고 흔한 그 꽃에 정을 주는 까닭은, 쓸쓸하게 낮은 곳에 무리지어 피어 있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다른 어느 꽃보다 청결하고 명징(明澄)하며 순정한 아름다움이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나만 아는(알기를 바라는) 당신의 아름다움, 깊이 유폐된 독점적인 사랑의 욕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 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의 순하고 깊은 정에 끌리는 것일 게다.

구절초는 가까이 들여다보면 환하게 깔깔거리는 초등학생 얼굴 같다. 진노랑 암술을 둘러싸고 이십 여개의 꽃잎이 활짝 웃는다. 작은 해바라기 같기도 하다. 초등학생이 여고생이 되고 다시 여물어 장성한 처자가 되어 어느 ‘모자란’ 여인의 머리칼에 머리핀처럼 꽂혔을 때, 혹은 소나무 밑 잔잔한 호숫가에 안개와 함께 무리지어 피어날 때, 구절초는 더 이상 숨어 있는 소박한 존재가 아니라 장미나 백합보다 더 화려한 꽃일 수 있다.

우리고장 김용택 시인은 구절초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늦가을 시린 달빛을 밟으며 마을을 벗어난 하얀 길을 따라가다 보면/ 느티나무에다 등을 기대고 달을 보며 환한 이마로 나를 기다리던/ 그 여자/ 내가 그냥 좋아했던 이웃마을 그 여자/ 들 패랭이 같고/ 느티나무 아래 일찍 핀 구절초 같던 그 여자”

이와 같은 ‘가을의 진객’ 구절초를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다. 정읍시 산내면 매죽리(일명 망경대) 일대에 조성한 전국 최대규모(4ha)의 옥정호 구절초 테마공원은 자연생 소나무와 어우러져 10월 초순이 되면 가을향기를 듬뿍 지닌 채 하얀 눈이 내린 듯한 모습으로 천지를 진동 시킨다. 또한 구절초 꽃밭을 가노라면 온 세상이 진한 꽃내음으로 가득 차 뭇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구절초 테마공원(정읍시 산내면 매죽리)은 전주에서 40~50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도심의 매케한 공기 속에서 벗어나 한적하고 평화로운 자연의 품에 안기고 싶다면 물안개가 안내하는 호젓한 드라이브를 즐기면서 살랑살랑 가을바람과 함께 금빛 물결 일렁이는 옥정호에서 구절초를 만나보자. 이곳에 오면 숨이 멎을 정도의 아름다운 가을 향기에 취해 버릴 것이다.

금년도 가을여행은 가족과 함께, 그리고 연인과 함께, 하얀 안개가 산수화를 그려내는 정읍시 산내 옥정호에서 구절초의 아름다운 추억을 듬뿍 담아가시길 적극 추천한다.

<정읍 산내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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