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레옥잠화가 흐느끼다
­부레옥잠화가 흐느끼다
  • 이소애
  • 승인 2007.09.18 1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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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베란다에는 이끼가 낀 돌확이 있다.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겨 있어서 이사할 때마다 버리지 않고 가지고 다녔다. 저녁 어둠이 툇마루에 드리우면 어머니는 바가지에 보리쌀을 담아 돌확에 쏟으면서 갈도록 명령하셨다. 둥글고 매끈한 돌을 돌려가며 문지르면 하얀 거품이 일고 보리쌀이 부드러워진다. 엉덩이를 쳐들고 돌리다 보면 어느새 저녁밥을 짓기 위해 어머니가 부엌으로 나오셨다.

어머니는 내가 성장하는 동안에도 계속 돌확의 쓰임에 따라 나를 부르곤 했었다. 김치를 담기 위해 고추를 가는 일, 마늘과 생강을 가는 일 등 돌확과 나는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마치 선심을 쓰시는 듯 돌확을 나에게 증여 하셨다.

푸른 이끼처럼 나의 추억이 묻어 있는 돌확에 나는 수상식물인 부레옥잠을 심었다. 그리고 하루의 에너지를 보랏빛 꽃인 부레옥잠으로부터 충전을 받는다. 여름이면 보랏빛 모시치마를 입으시는 어머니를 만나는 마음으로 화살기도를 하면서 맞이한다.

꽃은 아침에 일어나면 피어있다. 어젯밤만 하여도 꽃망울이 보이지 않았었는데 홀연히 하늘에서 천사가 터트렸는지 연보랏빛 꽃이 돌확에 피어 있다. 정말 갑자기 예고도 없이 꽃은 피고 지는가 보다.

봉황의 눈동자를 닮은 꽃잎의 무늬가 피카소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 같았다. 가운데 우뚝 선 꽃잎 하나에 짙은 보라색의 줄무늬가 있다. 그 줄무늬 가운데에 샛노란 반점이 봉황의 눈동자 같다고 해서 봉안련이라고도 한단다.

분명 아침 출근 시에 꽃이 피었음을 확인하였건만, 퇴근 무렵에는 그 꽃이 자취를 감춘다. 이상하다 싶어 가까이서 물 위에 떠 있는 볼록한 잎자루와 잎자루 사이를 살펴보았다.

아니 이럴 수가! 무슨 꽃이 허리를 꺾어 얼굴을 물 속에 묻고 죽어간단 말인가! 부레옥잠화의 최후의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찡하는 아픔이 치밀었다. 울컥 쏟아내고 싶은 꽃의 처절함이여!

바람에 꽃의 등허리가 흐느끼는 듯 흔들린다. 꺾인 등허리를 보고 있노라면 어머니의 흐느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 흐느낌이 나에게로 와서 전신으로 퍼져간다.

어머니의 뒷모습은 늘 초라해 보였다. 밤늦도록 다듬이질을 하시는 뒷모습.

대청마루에서 텅텅 빈 쌀 뒤지 뚜껑을 열고 뒤지 밑바닥을 긁으시는 등 굽은 뒷모습.

장독대 항아리에서 등 굽혀 된장을 푸시다가 땀을 훔치시던 뒷모습.

어머니의 뒷모습에서는 한숨이 배겨 있었으며 저녁노을 같은 아름다움도 있었다.

그렇게 사셨던 어머니에게 내가 반항을 했었던 일이 문득 생각이 났다. 어머니께 도전을 한다는 것은 주님께 반기를 드는 것과 같으리라.

루카복음 15장의 돌아 온 탕자의 비유에서처럼 나는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찐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 군요.”라고 말하는 큰아들에게 공감을 하였었다. 그러나 늘 어머니께서는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내 나이가 어머니의 나이가 된 지금에 와서야 나는 돌아 온 탕자를 받아드릴 마음의 자세가 되어가고 있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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