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세계 ―김경철을 기리며’
- 유국환 시인
들을 수 없어도 나는 보았지요
꺼칠한 손으로 애교머리를 쓸어내리는 여동생의 꿈을
말할 수 없어도 나에게도 꿈이 있었지요
기와를 굽더라도 어무이 배곯지 않게 하겠다고
갸가 어릴 때 경기가 왔는디
나가 뭘 모릉께 마이싱을 많이 맞아부렀제
그 이후로 귀가 먹어버렸어
사람들이 유행가에 어깨를 들썩이는 날이었지요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
당신과 나의 꿈을 안고서 흘러만 갑니다
너 데모했지, 연락병이지?
어디서 벙어리 흉내 내?
손사래질 위로 햇살보다 몽둥이가 먼저 쏟아졌습니다
까마득한 곳에서 어무이 말소리가 들렸지요
내일하고 모레면 부처님 오신 날인디
갸가 기와를 굽다가 가운데 손가락이 짤려부렸어
다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데 요래조래 찾아봉께
가운데 손가락 없는 애가 눈에 딱 들어오던걸
올해로 마흔 번 아들을 죽였다고 말하지만
울 어머니가 아들을 쓰다듬을 때마다
시커먼 땅속에서는
파란 잔디와 뜨거운 햇살이 살아난다니께요.
<해설>
1980년 5.18광주민주항쟁 첫 타살자 김경철(1958-1980) 씨를 소재로 쓴 시입니다. 구두를 만드는 28세의 가장 김경철은 말 못 하는 벙어리였는데, 아내와 딸을 두었습니다. 5월 18일 오후 4시쯤에 공수부대원이 벙어리를 낚아챘습니다. 그는 농아신분증을 꺼내 보이면서 손짓 발짓하며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공수부대원은 조롱하는 줄 착각하고 군홧발로 얼굴을 짓이기고 몽둥이를 입에 쑤셔 넣으며 말하라고 했지만 한 마디도 못하고 침묵으로 죽어가야 했습니다.
김경철은 “들을 수 없어도/ 꺼칠한 손으로 애교머리를 쓸어내리는 여동생의 꿈”을 보았고, 말할 수 없어도 “기와를 굽더라도 어무이 배곯지 않게 하겠다.”는 소박한 꿈이 있었습니다.
“갸가 어릴 때 경기가 왔는디/ 나가 뭘 모릉께 마이싱을 많이 맞아부렀제/ 그 이후로 귀가 먹어버렸어.” 어릴 때 후천성 청각장애인이 되었고, “사람들이 유행가에 어깨를 들썩이는 날” 그는 타살되었습니다. 이유는 데모대의 연락병노릇을 하면서 벙어리 흉내 낸다는 것이었습니다.“까마득한 곳에서 어무이 말소리”를 들으면서, 붙잡힌 지 11시간 뒤에 숨을 거뒀습니다. 그날 밤 9시 광장에 모인 6천 명의 사람들이 말 못하는 벙어리 대신 꺼이꺼이 외쳤습니다.
세월이 지나 그날이 돌아오고, 어머니가 아들을 쓰다듬을 때마다/ 시커먼 땅속에서는 파란 잔디와 뜨거운 햇살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어둠의 역사 속에서 잠든 영령들이 5월이 되면 해마다 “파란 잔디와 뜨거운 햇살”로 세상을 밝히고 있습니다.
강민숙 <시인/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