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생활자 로버트 파우저, 새책 ‘외국어 학습담’들고 애정하는 도시 전주로 발걸음
도시 생활자 로버트 파우저, 새책 ‘외국어 학습담’들고 애정하는 도시 전주로 발걸음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2.05.2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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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전주, 그냥 지나칠 수 없죠”
새책 '외국어 학습담'을 들고 전주를 방문한 도시 탐구자이자 언어 순례자인 로버트 파우저 작가를 지난 26일 잘익은언어들에서 만났다. (김미진 기자)
새책 '외국어 학습담'을 들고 전주를 방문한 도시 탐구자이자 언어 순례자인 로버트 파우저 작가를 지난 26일 잘익은언어들에서 만났다. (김미진 기자)

 로버트 파우저(Robert J. Fouser)는 한국 사회에서 매우 독특하고 유의미한 학자이자 저자다. 그의 책을 읽고 있는 동안 저자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은 물론, 영어를 모어로 쓰는 이가 한국어로 책을 집필했음을, 한국어 번역자의 부재를 종종 잊게되니 말이다. 새책 ‘외국어 학습담(혜화1117)’을 들고 전주의 독자와 만나기 위해 26일 잘익은언어들에 방문한 그를 만났다. 인터뷰도 물론 한국어로 진행됐다. 오랜만의 방문에도 그의 한국어 실력은 하나도 녹슬지 않았다.

로버트 파우저 작가가 26일 저녁 잘익은언어들에서 전주의 독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우고 있다.(혜화1117 제공)
로버트 파우저 작가가 26일 저녁 잘익은언어들에서 전주의 독자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우고 있다.(혜화1117 제공)

 코로나19를 겪는 와중에 미국에서는 백인 남성 경찰관에 의해 흑인 시민이 살해당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전 세계적으로 인종 차별에 대한 각성의 계기가 되었고, 로버트 파우저는 다시 한 번 스스로의 위치에 대해 돌아봤다. 미국인, 백인, 남성이라는 주류에 서 있던 삶. 언어를 통해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음을 행복하게 여기던 그의 태도가 어쩌면 선택의 여지 없이 영어를 배워야만 하는 이들의 사정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었는지, 수많은 언어를 섭렵한 자신의 행위가 주류 백인 남성의 입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를 말이다.

‘외국어 학습담’은 바로 이러한 성찰에서 쓰인 책이다. 외국어라는 단어에 대한 다양한 선입견과 맹목적인 의무감, 나아가 좌절의 경험으로 인한 열패감까지 소환한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다양한 이유로 외국어를 새롭게 시작할 것을 권한다.  

 “2014년 ‘외국어 전파담’을 내고 난 이후에 외국어 학습에 관한 독자들의 질문 많이 받았어요. 전파담이 역사적인 관점으로 외국어를 바라보았다면, 이번 학습담은 개인적인 내용도 있고, 외국어를 좋아하는 마니아들과 소통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8년 전 교수직을 그만두고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독립학자로 언어학 관련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원어민처럼 구사하는 한국어와 일본어의 유지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동시에 에스페란토와 이탈리아어 공부를 시작했고, 스페인어 실력을 되돌리기 위해 분투 중이다. 이러한 언어를 도구삼아 그는 수많은 도시의 이면을 살피며 책을 내기도 했는데, 그 안에는 그가 발견한 전주의 모습도 그려져 있었다.

 “전주는 여러 지방도시 중에서도 매우 좋아하는 도시예요. 전주한옥마을과 도시의 역사성, 그 규모도 너무 크지 않으면서 작지 않아 적당하고, 있을 것은 다 있고, 음식이 너무 맛있죠. 지난 2019년 ‘도시탐구기’란 책이 나왔을 땐 전주 카프가 서점에서 북토크를 했어요. 같은 도시에서 북토크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은 독자와의 인연을 생각하면 흥미로운 일입니다.”

 코로나19는 그의 발을 묶고 미국에서만 시간을 보내게 만들었지만, 묵혀두었던 자료들을 정리하고 집필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모든 것이 셧다운되다보니 결국 갈 수 있는 곳이 공원밖에 없어, 이 도시 남자는 오랜만에 자연과 벗 삼아 살았다. 한국은 늘 그리웠다. 물론 전주도 포함이다.

 “전주에는 1984년에 처음으로 방문했고, 스무 차례 정도 와본 것 같아요. 한국에 살면서 한옥에 대한 관심이 커졌던 2010년에 집중적으로 방문해서 전주와 서울 북촌 한옥마을을 비교했죠. 당시엔 매우 신선했던 논의였죠. 이후엔 도시재생과 여러 측면에서 지방도시의 가능성을 전주에서 발견하게 되면서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켜봤죠.”

 많은 외국인 저자들이 한국에 대해서 쓰거나 이야기할 때 대부분은 서울 중심이다. 로버트 파우저는 그래도 5천만 인구의 절반 이상은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 살고 있을 텐데, 서울만 보고 한국을 이해하는 일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가 도시를 탐구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지만, 홀로 사색을 즐길 때가 빛이 난다.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건축이나 도시재생의 관점에서 새로운 눈으로 도시를 바라보다 이거다 싶은 공간을 발견하면 반드시 혼자서 재방문한다. 두 발로 걸어다니면서 발견하는 기쁨을 즐기는 것이다. 이를테면 전주의 서학동이 그랬고, 남부시장 청년몰이 그랬다.  

 오랫동안 도시를 탐구한 그가 말하는 좋은 도시란 활기와 다양성이 보이는 도시다. 구체적으로는 문화적, 경제적 활동이 풍부한 활기찬 도시이고, 여러 사회계층과 세대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장소가 많은 도시다. 젊은 사람들을 위한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라든지, 어르신들이 걷기 쉬운 산책길이 곳곳에 많이 보이는 곳. 좋은 학교, 어린이집, 양로원까지 모든 세대를 위한 공간이 곳곳에 있어야 한다.

 “고학력의 백인 남자에게 차이나타운은 소비의 대상이죠. 다시 말해 인종적 다양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에 소통이 없으면 그 다양성은 소비의 대상 밖에 되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도시재생의 경우도 어떻게 균형있게 개발할 것인가가 관건예요. 전주의 여기 서점(잘익은언어들)도 한옥마을 보다 이 동네에 있는 것도 괜찮잖아요. 전주 사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니까요.”

 도시 전체가 어떠한 사업에 의해 테마파크처럼 바뀌어 원주민이 쫓겨나는 방식이 아니라 동네에 자생적인 문화공간이 생기고, 공동체에 굉장히 유명한 어떤 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을 서로 응원하는 일.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 소위 몇몇의 전문가나 정치가의 결정에 기대기 보다는 원주민과 함께 견고해지고 탄탄해 져야 할 것이란 이야기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전주시민보다 전주를 더 내밀하게 이해하고 있는 로버트 파우저의 입담에 깜짝 놀랐다. 일찍이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한국어를 배운 것은 미래를 잘 본 일 같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전주에 대한 애정의 조언도 잊지 않았다.

 “전주는 국제영화제도 열리고 있고, 한옥마을과 국악, 부채와 전통 공예품까지 명맥을 잇고 있어 문화적으로 풍부하죠. 도시 규모에 비해 나쁘지 않다고 봐요. 하지만 한옥마을이나 예쁘게 꾸민 외지인들을 위한 공간보다는 전주 시민을 위한 녹지를 늘려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게 어떨까 싶어요. 앞으로 전주는 점점 더 흥미롭게 변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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