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81) 박일만 시인의 ‘당산나무 - 육십령 46’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81) 박일만 시인의 ‘당산나무 - 육십령 46’
  • 강민숙 시인/문학박사
  • 승인 2021.12.19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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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산나무 - 육십령 46’
 - 박일만 시인
 

 한창 클 나이에 질통을 많이 져

 등이 굽은 나처럼

 저 당산나무 등도 굽어

 집집을 내려다보며,

 마을을 향해 귀 기울이고 산다

 그 요란하던 때까치 소리도

 밤 부엉이 소리도 다 듣고 살던

 젊었던 몸도

 가지가 하나, 둘 부러져 뼈대만 앙상하다

 도회지를 떠돌다가

 뒤늦게 여기까지 온

 내 몸도 이제 뼈만 남겠지

 

 <해설>  

우리 고향마을의 할아버지도 언제 심었는지 모른다는 당산나무가 마을 뒷산에 있고 정자나무는 마을 입구에 있었습니다. 정자나무가 앞을 지키는 파수꾼이라면 당산나무는 뒤에서 내려다보며 품에 안긴 듯 마을을 지키고 있습니다. 당산나무나 정자나무를 보면 왠지 나도 모르게 절이라도 하고 싶고, 무릎이라도 꿇고 싶어지는 것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경외감(敬畏感) 때문이겠지요.

전북 장수군 육십령마을 당산나무도 마을 뒷동산에 마치 수호신처럼 서있는가 봅니다. 수백 년 전부터 그 마을의 성쇠를 지켜봐 왔을 것입니다.

나무 아래 그늘은 마을 사람들에게 푸근한 휴식처가 되기도 하고, 마을의 안녕을 비는 굿이 열리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물론 어렸을 적 어린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지요. 놀이기구처럼 당산나무를 타고 오르내려도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처럼 묵묵히 받아줬으니까요.

박 시인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난하여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산업역군으로 나갔나 봅니다. 한창 성장할 나이에 무거운 짐을 나르고 살다 보니 성장보다는 등이 먼저 굽은 아픔이 시에서 그대로 느껴집니다.

시인은 중년이 되어 고단한 몸을 이끌고 고향마을로 돌아왔습니다. 당산나무도 늙어 가지가 부러져 나가고 뼈만 남은 모습을 보면서 등이 굽은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덜컹대는 세월 앞에서는 나무도 사람도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강민숙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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