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이런 질문이 유효한 나라
아직도 이런 질문이 유효한 나라
  • 이윤애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센터장
  • 승인 2021.10.19 1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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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의도에서는 국정감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상임위별로 대상기관부처나 관계자들을 불러내 다양한 질의나 질타가 이어진다는 뉴스를 접한다. 지난 6일 환경노동위원회 국감장에는 남양유업 물류센터에 근무하는 직원 한 명이 참고인으로 출석해 육아휴직 후 복귀과정에서 근무지 부당발령 건에 대한 증언을 청취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얼마 전 모성보호 갑질사례로 온 국민의 공분을 샀던 사건이다.

더욱 심각한 사태는 청취과정에서 해당기업은 당사자를 비롯한 여성들이 입사할 당시 ‘임신포기각서’를 받았다는 증언도 추가되었다. 위원들은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참고인의 피해사례뿐 아니라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추가 피해자는 없었는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은 없는지 면밀히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경악했다.

특히 남양유업은 아기용 분유나 유제품 등을 제조판매하는 기업이다. 즉 엄마와 아기가 있어야 유지되는 기업이다. 온갖 구설은 차치하더라도 모성보호와 일·가정 양립에 앞장서야 할 기업이 스스럼없이 범법을 저질러 왔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민다. 그들에게 사회적 책임과 윤리경영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21세기에 아직도 허접한 구시대적 기업이 버젓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망신스럽다.

또 하나의 기사는 아직도 여성에게 결혼과 출산을 묻는 채용면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대기업 에스케이 계열사의 경력직 채용면접과정에서 여성응시자에게 ‘만나는 사람 있느냐’, ‘결혼이나 출산계획은 있느냐?’ 등과 같은 성차별적 질문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부당함을 느낀 응시자는 신고했고 주무부서인 고용노동부는 ‘면접에서 유사한 질문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면접자료에 기재하지 않아 법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럴 때 종종 사용하는 비아냥 어구가 있다. ‘술을 마시고 운전을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채용절차에 관한 법에서는 ‘구직자에 대해 직무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신체조건이나 혼인여부 등의 정보를 기재토록 요구하거나 자료를 수집해서는 않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남녀고용평등법에 의하면 면접에서 결혼, 출산 등에 대해 묻는 행위는 법위반으로 본다. 고용노동부는 아예 사례집을 통해 ‘면접 중 결혼 후에도 직장생활을 계속할 것인지에 대해 특정 성별에게만 개인적인 질문을 하는 경우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고용평등법 위반여부는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근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에서는 ‘성평등 채용안내서’를 제작해 공공기관이나 각 기업체에 배포했다. 적어도 채용과정에서 여성들에게 결혼이나 자녀유무, 출산계획을 질문하는 것은 성차별에 해당하며 법위반이라고 친절하게 안내해주고 있다.

우리의 일터는 결혼과 자녀유무에 대해 성별에 따라 다르게 해석한다. 남성에게 결혼이란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자격이고 아이는 더욱더 열심히 일해야 할 명분이 된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결혼이란 무급노동에 더 많은 시간투입이 요구되고 아이가 있으면 업무에 집중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의 시작점이 된다. 그래서 일터는 여성을 배제한다.

결과적으로 남자들은 결혼 프리미엄을 누리는 셈이고 걸림돌을 아무리 제거해도 사회에 남아있는 고질적 편견은 여성들에게만 작동된다. 이런 이유로 여성들은 일과 가정을 병행하느라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다. 즉 직업이 없는 사람처럼 아이를 양육해야 되고 아이가 없는 사람처럼 일해야 한다.

일하는 엄마들은 항상 받는 질문인데 일하는 아빠들에게는 아무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럼 애들은 누가 봐요?”

이윤애<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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