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독립운동가 - 장매성, 박옥련, 박현숙, 장경례 선생
5월의 독립운동가 - 장매성, 박옥련, 박현숙, 장경례 선생
  • 전북동부보훈지청 제공
  • 승인 2021.05.0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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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생운동의 숨은주역, 여성독립운동의 새로운 길을 만들다

장매성, 박옥련, 박현숙, 장경례 선생은 1928년 소녀회를 결성하고,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한 주요 인물들이다.

광주학생운동은 1929년 10월 30일 광주에서 출발한 기차가 나주역에 도착했을 때 개찰구에서 일본인 학생 3명이 광주여고보를 다니던 여학생들을 밀치는 사태가 벌어지고, 이를 본 박준채가 일본인 학생을 꾸짖으면서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의 마찰이 생긴게 시작이다.

1928년 11월 초순 광주여고에 다니던 장매성이 주동이 되어 같은 학교의 박옥련, 고순례, 장경례, 암성금자, 남협협 등과 함께 광주사범학교 뒷언덕에 올라 소녀회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했다. 소녀회는 독서회중앙부 산하 독서회 회원들이 만든 연합 단체인 학생소비조합이 출범할 때 30원을 출자하는 등 남학생들의 주도하는 독서회와 연대활동을 펼쳤다.

1929년 11월 3일 광주역 앞에서 한국인과 일본인 학생간에 충돌이 일어났을 때, 소녀회원들은 붕대와 도포약을 가지고 뛰어와서 부상 학생을 구원하는 한편 한 손에 두 개씩이나 물주전자를 들고 쫓아 다니면서 열광적인 구호에 타는 목을 축여주는 활동을 펼쳤다.

이러한 소녀회는 일본 경찰이 광주학생운동 관련자들을 취조하는 과정에서 독서회가 드러나면서 함께 발각되었다. 당시 ‘3대 비밀결사’로 불린 성진회, 독서회, 소녀회에 연루되어 검거된 170여 명의 학생들은 예심을 이유로 재판이 열리지 않은 채 광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소녀회 사건은 1930년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 제1호 법정에서 재판이 시작되었으며, 10월 6일에 열린 1심 공판에서 검사의 구형대로 장매성은 징역 2년의 실형을 받았다. 장매성 외 10명의 여학생은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형을 선고받았다.

광주여고보를 그만두어야 했던 소녀회 회원들은 해방 이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의 후신인 전남여자고등학교로부터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들의 공훈을 기려 1990년 장매성, 박옥련, 장경례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고, 박현숙은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전북동부보훈지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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