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51) 안용산 시인의 ‘말뚝을 뽑으며’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51) 안용산 시인의 ‘말뚝을 뽑으며’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1.04.2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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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을 뽑으며’

 

- 안용산 시인

 

말뚝

뽑으려 흔들었다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땅이었다

땅 속을 파니 죽을힘으로

말뚝을 물고 있는

흙을 보았다

네가 있어

말뚝이었구나

뚫어오는 힘으로 맞서 저 스스로 단단해진 흙살이여!

서로를 물고 있는 너를 다 드러내고서야 비로소 말뚝이 뽑혔다.

 

<해설>

봄에는 화초들을 분갈이해도 좋은 시기입니다. 그래서 저도 화분에 심어진 커피나무를 얼마 전 분갈이를 했습니다. 화분의 밑바닥이 넓고 반대로 주둥이가 좁아 뿌리를 상하지 않게 뽑으려고 하는데 뽑히지 않아 여간 애를 먹었습니다.

농촌에 가면 논이나 밭둑에 경계선으로 박아 놓은 말뚝을 가끔 볼 수 있는데 그 말뚝을 뽑으려면 두 손으로 힘껏 잡아당긴다고 해서 쉽게 뽑혀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논두렁에 박아 진 말뚝은 더 뽑기가 어렵습니다. 진흙이 죽어라고 말뚝을 물고 놓아 주지 않기 때문에 좌우를 흔들어도 안 될 때는 열십자로 흔들어 보고 그 마저 안 될 때는 말뚝 주변의 흙을 삽으로 파헤쳐야 비로소 뽑을 수 있습니다.

이 시의 “말뚝”은 단순히 말뚝 그 자체에만 의미를 두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남의 가슴에 “말뚝”을 박아 놓은 것까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내 뱉는 말이 상대방에게 평생 “말뚝”이 될 수 있으므로 그 사람의 입장을 한번쯤 헤아려 본다면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에 말뚝 박는 말”은 덜 하겠지요.

살면서 가끔은 상대방의 가슴에 박힌 옹고집 같은 “말뚝”을 뽑으려고 흔들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에서는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땅” 때문에 뽑히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한발 물러나 말뚝을 둘러싸고 있는 땅을 파내고서야 비로소 “죽을힘으로/말뚝을 물고 있는/흙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는 상대방의 깊은 속을 이해하려면 그의 주변을 잘 통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리고 “네가 있어/말뚝이었구나”라는 깨달음이며, 그(말뚝)의 진면목을 비로소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네요.

이 시의 마무리 또한 새로운 깨달음을 제시합니다. “뚫어오는 힘으로 맞서 저 스스로 단단해진 흙살이여!/서로를 물고 있는 너를 다 드러내고서야 비로소 말뚝이 뽑혔다.”는 것은 진정한 마음의 소통이나 화해의 세계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얻게 된다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오늘은, 내가 살아오면서 남의 가슴에 말뚝을 박지 않았는지, 그 말뚝을 어떻게 뽑아줄 지 돌아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강민숙 <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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