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민들의 의지로 무주 ‘한풍루’ 보물지정 예고
군민들의 의지로 무주 ‘한풍루’ 보물지정 예고
  • 무주=김국진 기자
  • 승인 2021.04.21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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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읍 한풍루(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9호)의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지정 예고에 따른 기대감이 지역 전체로 번져나가고 있다.

 남원 광한루(廣寒樓), 전주 한벽당(寒碧堂)과 함께 호남삼한으로 불리며 그 가운데도 으뜸으로 꼽혀온 무주 한풍루(寒風樓)는 초선 초기 건립된 △오랜 역사성과,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관아누정’이라는 희소성, 목재의 조각수법과 입면의 비례 등 △건축요소에서 확인되는 예술성과 특이성이 보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무주 한풍루(연면적 155㎡_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 팔작지붕 건물, 이익공(二翼工)양식)’는 조선의 관아누정으로 여러 명사들이 즐겨 찾고 많은 시문을 남겨 놓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적성지’에 수록된 ‘아사누정기 한풍루조’에 따르면 1576년 무주를 찾은 백호 임제가 산수가 수려하고 아름다운 곳이라 칭송하고, 아울러 한풍루를 ‘호남제일’의 누각이라 칭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방화로 소실됐다가 임진왜란이 끝난 1599년 복설돼 1783년까지 보수, 중수과정을 거쳐 1910년 이후 불교 포교당과 무주 보통학교 공작실로 활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1936년에는 일제에 의해 영동군 양산면 가곡리 금강변으로 옮겨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1960년대 한풍루복구추진위원회가 결성되면서 주민들의 성금을 통해 1971년 무주군 무주읍 지남공원 내 현 위치로 옮겨 세워진 역사적 가치를 지닌 보물로 이건 과정에서 원부재를 최대한 활용해 역사성과 건축성, 학술성이 뛰어난 누정 건축물의 가치를 높였다.

 ‘무주 한풍루’의 현판은 조선시대 명필 한 호(석 봉_보존처리 후 다시 수장고에 보관 중)선생과 현대 송성용(강암)선생이 쓴 것이 있으며, 현재 한풍루에는 강암 선생(1913~1999)의 작품과 2002년 제작된 석봉 선생의 모각품이 걸려 있다.

 한풍루는 1973년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이 됐으며 2019년에는 무주군이 국가지정문화재 승격지정 신청을 했으나 한풍루 원형의 변형 여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추가고증 요구 의견이 제기되면서 부결된 바 있다.

 이후 무주군은 한풍루를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승격시키고자 한풍루의 문화재적 가치에 대한 연구·조사를 지속해 왔으며 올 2월 26일에는 ‘무주 한풍루’의 학술적·역사적·예술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학술대회를 개최,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한풍루의 역사와 가치 ▲한풍루의 건축 특성 ▲한풍루와 무주의 문화를 주제로 한 발표와 토론회를 진행한 바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지정을 앞두고 황인홍 무주군수는 “한풍루는 우리 군민들이 함께 지켜낸 문화유산이자 아픈 역사의 흔적과 문화재적인 특성, 학술적 가치를 고스란히 간직한 국가 보물이 분명한 만큼, 우리 무주군은 한풍루 보물지정을 계기로 지역에 산재해 있는 문화유적을 조사·연구하는데 더욱 심혈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무주군청 문화체육과 김정미 과장은 “군민의 힘으로 한풍루를 옮겨 세운 지 50년 만에 보물 승격을 목전에 두고 오늘의 감격이 자손대대 자랑으로 남을 수 있도록 보존·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한편, 문화재청에 따르면 ‘무주 한풍루,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 예고’건은 22일 문화재보호법 제23조 및 시행령 제11조에 따라 관보를 통해 공고되고 30일간 의견 수렴·검토 후 심사절차를 거쳐 최종 승격이 결정된다.

 무주=김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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