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49) 강민숙 시인의 ‘솟대의 꿈’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49) 강민숙 시인의 ‘솟대의 꿈’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1.04.11 0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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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솟대의 꿈’

 
 - 강민숙 시인

 

 백산에 올라 삭정이 주워

 비 오는 날 아버지가

 대청마루 걸터앉아 솟대를 만드신다.

 조선낫으로 나무껍질 벗겨

 가지 끝에다 종이배 닮은

 나무둥치 깎아 올려놓고

 어린 나를 보며 씩 웃으신다.

 아버지는 저 아슬아슬한 나뭇가지 위에

 왜 배를 매달아 놓으신 걸까

 동진강 물길 따라

 용왕님 만나고 싶은 걸까

 그러다 송곳으로 나무둥치에

 구멍을 뚫으신다.

 돛대를 세우는가 싶더니

 새 주둥이를 끼워 넣으신다.

 아버지의 꿈은

 바다가 아니라 하늘이었나 보다

 몰아쳐 오는 외세의 거친 폭풍 속에서

 갑오년 동학농민의

 외침을 듣고 있나 보다

 길게 목을 뺀 새가 되어.

 

 <해설>  

 제 고향은 부안 백산입니다. 어릴 때부터 백산의 부드러운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자랐습니다. 철이 들어서야 백산에 ‘동학농민군의 함성’이 담긴 줄도 알았고, 서면 백산(白山), 앉으면 죽산(竹山)’이라는 말뜻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백산에 올라 삭정이 주워/비 오는 날 아버지가/대청마루 걸터앉아 솟대를” 만들었습니다. 어린 나는 궁금했습니다. 아버지는 “저 아슬아슬한 나뭇가지 위에/왜 배를 매달아 놓았을까.” 그것은 ”동진강 물길 따라/용왕님 만나고 싶어서였을까?”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꿈은/바다가 아니라 하늘이었다.” 이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저마다 가슴에 하늘을 모시고 사는 평등한 세상을 꿈꿨던 것입니다. 

 백산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입니다. 전주성을 위협할 수 있으며, 전라도 지역의 군세를 결집할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날 백산에 모인 동학농민군은 “몰아쳐 오는 외세의 거친 폭풍 속에서/갑오년 동학농민의/외침”을 온 천하에 선포했습니다. 

 오늘은 제가 도민일보의 시 해설을 맡은 지 1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신문사의 제안대로 졸시 「솟대의 꿈」과 해설을 싣게 되었고, “갑오년 동학농민의/외침”을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강민숙 시인 /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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