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독립운동가 - 김원용, 전경무, 심영신, 민함나 선생
4월의 독립운동가 - 김원용, 전경무, 심영신, 민함나 선생
  • 전북동부보훈지청
  • 승인 2021.04.05 12: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립을 위한 미주지역의 거국적 단합, 독립의 원동력이 되다

1930년대 후반부터 미국 본토와 하와이에서는 독립운동을 위해 미주지역 한인사회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독립운동 단체를 통일하고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라는 연합기관을 설치하고 13조의 ‘재미한족연합위원회 규정’을 결의하였다.

김원용, 전경무, 심영신, 민함나 선생은 오랫동안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이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이끌었다.

김원용·전경무 선생은 워싱턴에 별도로 설치된 외교사무소에서 대외교섭과 외교활동을 주도하였는데, 김원용 선생은 1945년 5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1개년 계획’이라는 문건을 통하여 해방된 국가건설을 위해 재미한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을 강조했다. 전경무 선생은 뉴욕 콜럼비아 라디오 방송에서 미국인을 상대로 ‘한국은 왜 독립해야 하는가?’ 라는 제목으로 연설하며 한인들의 독립 열망을 전하였다. 아울러 미국의 라디오 방송이나 교육부 등 주요기관, 그리고 각종 집회에 참석하여 한국의 독립 관련 연설로 미국인의 관심을 모았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미국 우정국의 한국 우표 발행에 참여해 1944년 11월 2일, 미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태극기가 들어간 한국우표를 소개하기도 하였다.

외교적 노력과 병행하여 임시정부 등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자금모집 운동도 활발하게 펼쳐졌다. 심영신 선생은 미국 육군 소속 건축부에서 사업하며 적극적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했으며 본인의 월급 전액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열성적인 후원은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에, “심영신 등 제씨가 임시정부를 위하여 정성을 보내주기 시작하였다.”고 언급될 정도였다. 1945년 3월 10일 하와이 여성들은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국내 동포들을 위해 연합부인구제회를 조직하여 민함나 선생이 회장에, 심영신 선생이 부회장에 선출되기도 하였다.

1942년 2월 하와이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에서 독립운동 자금의 대대적인 모금을 위해 독립금 수봉(收捧)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이때 민함나 선생은 의사부 위원으로 호놀룰루에서 독립자금을 모금하였고, 이후에도 독립운동 자금 지원을 위한 모금에 매진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김원용 선생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 전경무 선생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 심영신 선생은 1997년 건국훈장 애국장, 민함나 선생은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전북동부보훈지청 제공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