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후보
정직한 후보
  • 윤준병 국회의원
  • 승인 2021.03.31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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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후보’.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거짓말을 일삼던 국회의원이 어느 날 갑자기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입’으로 변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의 상황을 그린 코미디 영화의 제목이다.

영화는 정치와 정직이란 단어가 서로 생경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게 된 현실을 풍자하며 웃음을 준다. 그러나 관객들은 거짓말로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해가는 영화 속의 주인공이 현실의 정치인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느끼면서 씁쓸함이 남는다.

필자는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4·7 보궐선거를 맞이하면서 위 영화의 제목이 떠올랐다. 영화가 묘사하는 정치 현실이 4·7 보궐선거 후보자의 행태와 너무 닮아 ‘리얼’하고,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3월 18일, 필자는 서울시에서 같이 근무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함께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했다. 보금자리주택지구 지정에 대해“서울시 주택국장의 전결사안으로 주택국장 임의로 결정한 것이라 전혀 몰랐다.”라는 오 후보의 해명이 서울시민의 눈높이에서 본 상식과 너무 동떨어졌다는 점을 지적한 기자회견이었다.

오세훈 후보는 입장 발표를 통해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달라.”고 했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비상식적 거짓 해명이 또 다른 거짓 해명을 낳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 후보는 서울시장 재임 시절 가족이 소유한 내곡동 땅을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하면서 셀프보상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크게 세 번의 해명을 했으나 모두 거짓 해명으로 판명되었다.

먼저, 오 후보는 내곡동 땅이 참여정부 당시인 2006년 국민임대주택 사업부지로 지정됐고, 이명박 정부 때 보금자리주택으로 명칭만 바뀌었다고 해명했다. 서울시장으로 취임할 때에는 이미 지구 지정이 완료되어 자신의 시장 재임 시에는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하지 않았다는 의미의 해명이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 바로 드러났다. 보금자리주택지구 지정이 완료된 시점은 이명박 정부 취임 뒤인 2009년으로 확인되었으며, SH 공문 등에 따르면 참여정부 시절에는 서초구와 지역 주민, 환경부 등의 반대로 사업이 상당 기간 표류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짓 해명이 드러나자 오 후보는 당시 공문서를 확인 못해 혼선이 있었다고 변명을 했다.

두 번째, 오 후보는 내곡동 땅은 처가 소유라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2000년 국회의원과 2008년 서울시장으로 등록한 오 후보의 공직자 재산신고 서류에 내곡동 땅이 등재되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에 해당 땅이 논란이 되는 땅인지 몰랐다는 뜻이라고 재차 해명을 번복했다.

세 번째, 오 후보는 보금자리주택지구 지정은 당시 “서울시 주택국장의 전결사안으로 주택국장 임의로 결정한 것이라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시에서 36년간 공직에 몸담아 왔던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보금자리주택지구 지정처럼 주요 도시계획사항에 대해 시장에게 구두보고를 통한 사전승인 없이 전결권을 행사하는 주택국장은 상상하기 어렵다. 기자회견 이후, 서울시의회 도시관리위원회와 국회 국정감사 회의록을 통해 오 후보가 직접 보고받고 지시한 것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베드로는 세 번의 거짓말로 예수를 배반했다. 정치인의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낳고, 반복된 거짓말은 유권자의 믿음을 무너뜨리고 정치 혐오를 조장한다.

‘정직한 후보’를 찾기 어렵다고 한다. 영화는 사이다 같은 풍자를 통해 현실의 정치를 뒤엎고, ‘진실한 입’을 가진 정치인을 바라는 유권자의 희망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정치가 유권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달콤한 거짓말의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 국민은 능숙하게 거짓말로 기망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비판을 받더라도 사실을 밝히고 책임을 질 줄 하는 정치인을 절실하게 원한다. 정직은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윤준병<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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