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47) 이혜선 시인의 ‘그 참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47) 이혜선 시인의 ‘그 참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1.03.2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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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참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 이혜선 시인
 

 

 양지바른 초가집 추녀 끝에는 참새가 살았다
 

 나락타작이 끝나면 마당엔 곡식 낟가리가 쌓이고 바깥마당엔 짚동이 높이 쌓였다

 숨기놀이 꼬마들은 보름달의 눈을 가려놓고 짚동 사이에 숨었다
 

 새끼 꼬기 가마니 짜기가 시들해진 겨울밤이면 동네오빠들은 참새잡이에 나섰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지붕 추녀 속에 살그머니 손을 집어넣어 잠든 참새를 잡아내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한 명은 사다리를 잡아주고 한 명은 참새를 잡고 또 다른 사람은 참새를 받아 통 속에 담았다 어떤 날은 손끝에 물컹하는 게 잡혀서 깜짝 놀라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먼저 와서 참새 잡아먹는 뱀을 만졌다고 했다
 

 용수네 집에 모여서 모닥불을 피우고 파닥이는 참새를 구울 때쯤 나는

 슬그머니 뒷줄로 빠져서 어두운 골목길로 혼자 돌아왔다
 

 포근한 잠자리에서 억울하게 잡혀 나와 아작아작 씹히는

 참새의 영혼이 내게 옮겨 붙을까봐

 그 오빠들 눈 마주칠까봐

 겨울 내내

 동네 바깥 길로 피해 다녔다

 

 <해설>  

 옛 추억과 함께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시입니다. 가을이면 떼 지어 다니는 참새는 농부의 곡식을 축내기 때문에 목청껏 참새를 쫓았던 기억이 납니다. 날이 추워지면 참새는 초가지붕 이엉 속에 보금자리를 튼다는 것을 안 청년들이 참새 사냥을 합니다. 손을 이엉 틈으로 집어넣고 행여 날아 갈까봐 작은 그물망을 덧씌우고 잡습니다. 따뜻한 참새를 잡아 “용수네 집에 모여서 모닥불을 피우고 파닥이는 참새를 구울 때쯤 나는/슬그머니 빠져 나와 어두운 골목길로 혼자 돌아”옵니다.  

 겁 많은 소녀의 상상이 그 뒤를 따르네요. “포근한 잠자리에서 억울하게 잡혀 나와 아작아작 씹히는/참새의 영혼이 내게 옮겨 붙을까봐/그 오빠들 눈 마주칠까봐” 겨울 내내 동네 바깥 길로 피해 다녔다고 하니까요. 

 시인은 아련한 추억을 꺼내 들지만 씹혀진 참새의 영혼이나 오빠들의 영혼이 농촌의 맑은 공기처럼 맑게 느껴집니다.

 시인의 말마따나 궁금해집니다. 그 많던 “참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어딘가 초가지붕보다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어 얼어 죽지 않고 무사히 겨울을 난

 참새들이 오늘도 하늘을 날아오르며 울타리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겠지요,
 

 강민숙 시인 /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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