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편안히 가세요
어르신, 편안히 가세요
  • 조옥희 완주 실로암 요양병원 간호부장
  • 승인 2021.03.27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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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숭아꽃 향기 날리는 4월이 오면 유독 스물대는 아픔이 호젓이 찾아온다. 20여년전 암 선고를 받고 삶의 끝자락에서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요양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건강하게 지낸다. 이곳엔 참으로 많은 사연들을 갖고 입원 하신 어르신들이 계신다.

 물론, 질병이 있어 입원하신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자녀들이 돌보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돌볼 수 없거나 혹은 자녀들이 돌보지 않아 오랜 기간 입원해 계시다가 마지막 생을 마감하시는 분들도 더러 있다. 

 그 중에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한 분이 있다.

 30~40년 전에 서울 명동에서 미장원을 운영하며 처녀의 몸으로 다섯 동생들을 뒷바라지 하면서 대학까지 모두 훌륭하게 키워내신 70대 여자 환자 분이다.

 물론, 보답을 기대하지 않고 베푼 사랑과 헌신이었겠지만 매주 토요일만 되면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남동생을 기다리며 창밖에 멍하니 앉아 계신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의 고독의 파장이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해지는 듯하다.

 심한 우울증을 앓고 계시는데 요즘은 기분이 많이 좋아 지셔서 자주 웃기도 하시고 내가 병실에 가면 반갑게 맞으면서 내 손을 꼭 잡고 병원 매점으로 간식 사러 가자고 하신다.

 이곳에서는 실로 많은 죽음도 보게 된다.

 현종을 사로잡은 양귀비도, 케네디를 울렸던 마를린 먼로도, 천하일색 황진이도 북망산천 황톳재에 한줌의 흙으로 홍안의 미소만 남긴 채 떠났다.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고 철학자 토마스 하리바튼은 말했다. 톨스토이는 ‘죽음이 위대한 의사’라는 말을 남기고 〈부활〉이라는 명작을 남겼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쓸쓸하게 가시는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한없이 슬퍼진다.

 이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중환자실 수간호사의 다급한 전화 한통을 받았다. “방금 000 님 운명하셨어요.”

 그렇구나! 또 이렇게 생을 마감 하시는구나. 창문 너머 하늘을 바라보니 고운 새 한 마리가 허공에서 맴돈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려본다. 죽음을 빛나게 할 수는 없을까? 죽음 저 너머의 영원한 안식을 의식하면서 말이다.

 지난 한 주 동안에도 많은 어르신들이 하늘나라로 가셨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어르신의 야윈 볼 위로 수정같은 이슬이 흐른다. 난 허물어진 자그마한 육신을 가만히 안으면서 속삭여 본다. 어르신, 편안히 가세요 라고….

 조옥희 <완주 실로암 요양병원 간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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