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96> 청빈함을 말하다.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 <96> 청빈함을 말하다.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1.03.0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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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명하여 김수온이 찬한 『사리영응기』

  김수온(金守溫, 1410~1481)의 호는 괴애(乖崖)·식우이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여 독서 분야가 매우 넓었다고 한다. 독서법 또한 특이하였는데, “남의 책을 빌려 성균관에 오가는 날이면 책을 한 장씩 떼어 소매 속에 감추어 두고 음독하였다. 혹시 잊어버리는 부분이 있으면 꺼내어 보고 다 외우게 되면 그것을 버렸으니 책을 모두 외우면 한 질(秩)의 책이 다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니 그에게 누가 책을 빌려주고 싶었겠는가.

  신숙주(申叔舟, 1417~ 1475)도 그에게 책을 빌려주고, 돌려주지 않자 그를 찾아가니 그의 책이 한 장씩 뜯어져 방의 벽에 붙어 있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러한 장면을 보고 놀라 묻자, “이렇게 해야 앉아서도 누워서도 볼 수 있으니 책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라고 했다. 글의 뜻이 이해될 때까지 보았다는 것이다.

  괴애는 요즘같은 인터넷 시대에 맞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책을 복사도 하고 자료를 띄워 영상으로도 볼 수 있으니, 아무래도 그의 이러한 독서법은 몇백년을 앞선 천재성과 창의성이 빛나는 대목일 수도 있겠다.

  그는 이러한 습득법에 대해 “책을 너무 급하게 읽으면 그 의미를 맛보기가 어렵다. 나는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고 안정시키기 때문에 읽는 곳마다 이해할 수 있다. 학문은 모름지기 책을 숙독(熟讀)하여 천천히 그 뜻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빼어난 학문과 문장 실력은 아마도 이러한 독서법에서 나온듯하다. 시문이 뛰어나 명나라에까지 알려졌으며 세종때 문재를 인정받아 집현전에 뽑혔다.

  조선 전기 책이 귀했던 시절 독특한 독서법만큼 그는 청빈한 삶을 살았다. 책장이 떨어져 제목은 알 수 없지만 부원군 괴애의 청빈한 삶이 드러나는 「실제(失題)」라는 시이다.

 

  입이 마를 때면 가끔 차로 입을 적시고

  창자를 지탱해주는 보리밥 한낮에야 먹는다네.

  뼈에 사무치는 청빈함 아직도 옛날과 같으니

  높은 벼슬에 봉해진 부원군(府院君)의 집이라 말하지 마소.

 

  부원군이라는 높은 지위에 올랐어도 젊은 날의 청빈했던 삶에서 멀어진 것이 아니라 일관된 삶을 살았던 듯하다. 김수온은 성종 2년(1471) 그의 나이 62세 때 영산부원군으로 봉해졌다. 그의 시(詩)중에 차가 등장하는 글은 몇 편 되지 않지만 차는 청빈함과 소통을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 다음은 풍기 김공이 찾아준 것에 감사하는 「사풍기김공견방(謝豊基金公見訪)」이라는 시이다.

 

  늘그막에 관직이 한가하여 누추한 집에 누우니

  찻그릇과 함께 또다시 술 동이 남아있구나.

  세상 사람들을 위해 사립문을 닫지 않고

  반가운 객을 위해 높은 탁자 청소한다네.

  고요함에 배회하며 석노(釋老)를 탐구하고

  한가로움에 담소하고 시서(詩書)를 논박하네.

  은근히 다시 백련(白蓮)의 모임을 약속하고

  한 해가 저물 때 서로 좇아 모임을 맺어 보리라.

 

  함께 나눌 사람들을 위해 차와 술이 마련된 그림이 절로 연상되는 시이다. 늘그막에 누추한 집에서 사립문을 열어놓고 반간운 이을 기다리며 청소하는 모습이다. 한가롭고 고요하여 석가모니와 노자를 탐구하고 시서를 논하니 그의 삶은 책과 차와 벗만으로 족했던 것 같다.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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