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기고] 포스트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선거
[선거기고] 포스트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선거
  • 신상호  전주시덕진구선거관리위원회 홍보주무관
  • 승인 2021.03.02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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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호  <전주시덕진구선거관리위원회 홍보주무관

 민주주의는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한다. 계층, 이념에 따라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정당을 만들고 집권을 위해 시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면서 경쟁한다. 상호간에 이해를 달리하는 집단과 개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정당이라는 합법적 수단을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의 충돌을 조정하고 설득하며 타협을 이끌어 내어 제도적으로 해결을 도모하는 게 정당의 역할이다. 이런 역할에 충실한 정당이 많아질수록 민주주의는 튼실해 지는 것이다.

 그런데 정당이 주권재민에 따른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형식은 민주주의를 취하면서도 실질은 권력 있는 자와 금력 있는 자만을 위한 특권정치가 전개되는 현실에서 살아가게 된다. 다수의 평범한 시민들이 주변부로 배제되는 포스트민주주의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시민들은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는 정치에 대해 체념을 한다. 변화가 없는 현실에다 미래에 대한 불안까지 더해지면 이 체념은 슬픔으로 변하고 분노로 확산된다. 이런 분노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해서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사상 초유의 미국 의사당 난입과 폭력사태는 이에 선동되는 시민들이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민주주의의 본산이라고 하는 미국에서 민주주의에 위기가 왔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바다 건너 이야기라고만 치부하기엔 우리의 현실도 녹록지 않다. 소득과 자산의 격차에 따른 불평등 심화, 삶의 환경과 미래가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결정되는 노동 여건, 이런 현실들이 계층 간의 대립구조를 만들고 극심한 사회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사회에 대한 분노가 임계점을 넘으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까. 위 사례는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특권계층을 위한 정치적 노림수로만 쓰려하지 않고, 다양한 계층의 얽히고 설킨 이해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능력과 진정성을 갖춘 정당이 절실히 필요하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을 정하거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할 때 임금을 주는 사람의 입장만을 고려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먹고 사느라 바빠서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시민들이 많다. 정치에 대한 혐오와 냉소는 이런 무관심을 먹고 쑥쑥 자란다. 혐오해서 관심이 더 멀어질수록 가장 반기는 이들은 기성 정당과 소속 정치인이다. 내가 바빠서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정치는 내 고달픈 삶에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내년에는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유권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가족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긍정적인 변화가 오기를 기대하고, 근심 보단 희망을 찾고자 한다면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 수많은 내가 모여 강을 이루고 바다로 나아가듯이 나의 참여 너의 참여가 모이면 우리들의 참여가 되고 이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커다란 힘의 근원이 된다는 점을 유권자 모두 기억했으면 한다.

 권한이 집중된 몇 명이 본인들의 이해에 부합하게 현안을 결정하는 과두제 정당이 아니라, 각계 각층에서 분출하는 다양한 욕구와 바람을 용광로처럼 잘 녹여서 해결책을 만들 줄 아는 정당을 만드는 것은 결국 유권자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신상호  <전주시덕진구선거관리위원회 홍보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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