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독립운동가 - 이인정·한운석·송재만 선생
3월의 독립운동가 - 이인정·한운석·송재만 선생
  • 전북동부보훈지청
  • 승인 2021.03.01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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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이 하나되어 저항한 만세운동

4월 4일 대호지·정미면(현 당진시) 독립만세운동은 민, 관이 하나되어 준비하고 다양한 계층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만세운동으로 전국적으로 일어난 3·1만세운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인정, 송재만, 한운석 선생은 4월 4일 대호지·정미면(현 당진시) 독립만세운동 주요 인물들이다. 세분은 고종의 국장과 3·1독립만세운동을 목격하고 온 대호지 지역 유생들과 협조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수행했다.

이인정 선생은 면장으로 만세운동 준비를 전반적으로 지휘했으며, 송재만 선생은 만세운동을 위해 작성한 도로 수선 공문을 면내 8개 마을 이장이나 이장대리 집으로 방문해 직접 전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만세 내용을 알리도록 했다. 그리고 저녁 무렵 면사무소에 도호의숙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한운석 선생을 초청하여 만세 계획을 전달하고 애국가 작사를 요청하였다. 요청은 받은 한운석 선생은 그 자리에서 애국가를 작사하고 참여계획을 논의했다.

거사 당일인 4월 4일 대호지면 면사무소 앞에 집합한 면민 400~500명에게 이인정 선생은 ‘도로 수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조선독립운동을 위해 모이게 한 것이다. 각자 찬성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천의시장으로 향해 가자’고 연설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선창하며 군중을 이끌며 적극적으로 만세운동을 지휘했다. 송재만 선생은 사전에 준비한 태극기를 꺼내고 애국가가 적힌 인쇄물을 배포했다. 오전 11시경 천의시장에 도착하여 시장 일대와 천의 경찰관주재소, 정미면사무소 등을 활보하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경찰들은 오후가 되어 귀가하려는 민중들에게 태극기를 탈취하려고 시도했고 군중들은 저항하며 돌을 던지고 경찰들을 구타하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4월 5일부터 시작된 검거 및 탄압에서 이인정, 송재만 선생 등이 체포되어 경찰서로 끌려갔으며 1차적으로 17명이 검거를 당했다. 계속된 탄압으로 군인과 경찰에 의해 200여 명 이상이 검거되어 고초를 겪었다. 그 중 재판에 54명이 회부 되어 대규모 만세운동이 되었다. 이인정, 한운석 선생은 1920년 2월 7일 상고 기각으로 징역 1년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송재만 선생도 같은 날 상고기각으로 5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일어난 만큼 일제의 탄압도 극렬하여 순국 3명, 태형 88명, 불기소 65명, 면소 4명, 징역 39명 등 199명이 처벌을 받았으며 이에 2020년까지 총 124명이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었다.

정부에서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이인정 선생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한운석 선생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송재만 선생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전북동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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