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집, 밀접, 밀폐, 그 삼밀에 대한 이야기
밀집, 밀접, 밀폐, 그 삼밀에 대한 이야기
  • 소재호 전북예총 회장
  • 승인 2021.02.25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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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저 삼밀에 의해 더욱 확산된다고 한다. 코로나 방역의 1차 단계는 삼밀의 분쇄라고도 한다. 인간관계에서 그 역학적 구조상 가장 긍정적 수단이 반대로 저 괴질의 확산에 나쁜 수단으로 쓰인다는 실상을 접하며 필자는 매우 큰 아이러니를 느낀다.

중국 고대에 현교(顯敎:일반 불교)에 대칭되는 지점에 밀교(密敎)라는 종파가 있었다. 삼밀의 수행 종파였다. 부처의 깨우친 진리를 직설적으로 은밀하게 진언(眞言)을 통한 주력 수행을 근간으로 하는 교파이며, 중생의 몸, 입, 마음으로 짓게 되는 업(身, 口, 意)을 부처의 청정 업으로 대체한 수행법이었다.

개신교의 몇몇 종파가 은밀하게 수행하는 예배 수단으로 삼밀을 좇아 행하여 저 코로나 방역 지침을 뒤엎어 삼밀을 부정적 의미로 변환하는 우를 범한 것이니 삼밀에 대한 정과 반의 아이러니는 기막히게 부각된다. 사실 필자는 ‘은밀한 진언, 은밀한 주술성’이란 말에 역설적 꼬투리를 잡고 싶어진 것이다. 신성한 정신, 고결한 결의를 은밀하게 전승하여 효과의 상승을 꾀하기도 하지만 한편 그 은밀함의 내포에는 비건전성이란 화두가 숨는다. 밖으로 나타내어 떳떳지 못한 숨겨진 밀의(密意)가 있을 것이란 유추가 가능하다. 그러니까 몇몇 소수 교파의 개신교가 사이비적 종교 행위로 신성한 ‘성경 공부’란 미명하에 속으로 숨겨서 교세 확창, 또는 몇 가지 세속적 이익을 추구한다고 보여진다. 그리하여 정당하고 신성하게 운영되는 개신교 정파까지 함께 모독의 구정물을 뒤집어쓰는 양이 매우 안타깝다. 필자의 주변에는 정말로 진정한 개신교 신앙인이 많다. 그들 근엄하고 정중하며 사려 밝은 인생살이에 존경과 경의를 금치 못하는 차에 저러한 은밀한 부정적 삼밀로 인해 무안감을 자주 느낀다. 왜 삼밀이 괴질을 불러오고 신성한 종교를 사이비화로 전락시키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삼밀의 ‘밀’자 의도가 다르긴 해도 그 은밀성으로 부정적 개념이 끼어들어 묘한 실소를 자아낸다. 2000년을 넘어 계승되고 숭배된 성경의 말씀에 무슨 괴이한 변설의 덧붙임은 불경스러움 그 자체다. 그 괴이한 종파의 삼밀 고수 태도는 종교자유 침탈이라는 그들 주장보다 더 고부가가치의 생명 존중이란 상위 가치에 우선을 두어야 마땅할 것이다.

삼밀을 통해 진리를 전하려 한다는 몇몇 우매한 목사들 선동으로 연유하여 하느님이 오히려 괴질을 퍼뜨린다는 역설적 결과에 다다른 괴변에 직면함을 왜 모르는가? 삼밀을 분쇄하려는 방역 당국의 처사가 정부 비판을 막으려는 꼼수라고 선동하며 선동자를 따르는 순박한 신앙들을 병들게 하여 생명 경시의 우를 범한다는 주장에는 어찌 대답할 것인가? 하여 꼼수든 정수든 어찌 정의되든 간에 생명 존중의 최상 가치 실현을 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밀접, 밀집, 밀폐를 건전한 이념의 가족주의에 대입해 보면 이상적인 개념이다. 인간관계나 사회적 구조상의 역학관계로서 저 삼밀은 인간주의 실현에 매우 첩경의 수단이 될 것이다.

부부간에, 부모 자식 간에 저 삼밀의 효용성이 증대된다면, 그런 건전한 가정들이 모여 나라가 이룩된다면, 그야말로 국가는 이 상태를 이룰 것이다.

소재호<전북 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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