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전라도를 비롯한 열읍의 향교가 거의 소실되었으나 오직 장수향교만 전화를 입지 않고 보존된 것은 정경손의 공로였다 후인들이 의행(義行)을 기리기 위하여 향교 문전에 의거비를 세우게 되었는데, 이 비는 장수의 삼절(三絶)로 이름나 있다.
또한 향교를 여행하면서 장수의 맛집을 두루두루 살필 수도 있다. 능이버섯과 능이버섯 추출물은 기관지·천식·감기·산후병·콜레스테롤·산화·암 등에 효과가 있으며, 특히 위암에 강한 효능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간에서는 쇠고기를 먹고 체했을 때 능이버섯 달인 물을 소화제로 이용해 왔다. 능이버섯은 씹는 맛이 좋으나 생식은 중독되는 수가 있어 반드시 건조 보관이나 가열 요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품은, 장수향교
장수향교는 1407년(조선 태종 7)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配享)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장수읍 선창리 당곡에 창건됐다.
특히 장수향교는 창건 당시의 건물양식이 크게 훼손되지 않고 조선 전기의 향교 형태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사마재(司馬齋)·양사재(養士齋)·고사(庫舍)·부강문(扶綱門)·정충복비각(丁忠僕碑閣) 등이 있다. 건축형태는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이다. 강학공간은 강당이 앞에 있고, 재사가 뒤에 있는 전당후재(前堂後齋)의 배치이다.
1681년(숙종 7)에 유림의 건의로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고 1686년(숙종 12)에 창건 당시 원형대로 이건(移建)됐다.
1877년(고종 14)에는 현감 홍우정이 중수, 1935년에 중수하고 1970년, 1973년, 1975년에 각각 보수했으며 장수향교는 정경손의 공으로 임진왜란 때에도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어 조선 전기 향교의 형태를 잘 알 수 있다.
건물의 구조가 다포형(多包形)이라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 흔히 학문을 닦는 곳을 행단(杏壇) 즉 ‘은행나무 단’이라고 부르는데, 공자가 은행나무 단에서 제자를 가르친 연유로, 우리나라에 유학이 들어오고 수많은 향교와 서원이 건립되면서 그 뜻을 기리고자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다.
홍실문이 향교 입구를 알리고 있으며 그 옆에는 말(馬)에서 내려 예를 갖추길 요구하는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홍실문을 지나 향교의 정문 격인 외삼문(外三門) 앞에는 비각이 모셔져 있다. 바로 정충복비(丁忠僕碑,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38호)다.
정충복지는 정유재란 때 왜적의 침입으로부터 장수향교(長水鄕校)를 보존한 정경손(丁敬孫)의 업적을 기린 비로, 1846년(헌종 12) 장수향교 문 앞에 건립됐다.
임진왜란 때 왜적은 전주성을 공격하기 위해 금산(錦山)·진안(鎭安)·용담(龍潭) 등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때 왜적의 한 부대는 육십령(六十嶺)을 넘어 장수(長水)에도 침입했다.
왜적들이 장수향교의 문묘 앞에 이르자 경서를 외며 문묘를 지키던 정경손이 “만약 문에 들려거든 내 목을 먼저 베고 들라”라고 말하니, 왜적들도 흔들림 없이 늠름한 그의 기상에 감복되어 ‘본성역물범(本聖域勿犯)’이라는 글을 남기고 물러났다고 한다.
때문에 임진왜란으로 각지의 향교가 거의 소실된 데 반해 장수향교만이 전화를 입지 않고 거의 원형 그대로 보전되어 있으며 후세 사람들이 향교 문 앞에 비를 세워 그 뜻을 기리고 있다.
향교안으로 들어서면 보물 제272호 장수향교 대성전을 볼 수 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성현께 제사를 지내기 위한 공간으로 앞면 3칸, 옆면 3칸 크기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특히 처마를 받치고 있는 장식구조의 겉모양을 화려하게 꾸몄는데 이 장식은 조선 중기 이후 건축의 대표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5성(五聖), 송조 4현(宋朝 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장수향교는 전묘후학의 배치와는 달리 전당후재(前堂後齋)의 배치로 대성전 앞쪽에 강학공간의 중심지 명륜당이 자리잡고 있다. 명륜당 뒤쪽에는 은행나무가 있으며 동쪽과 서쪽을 마주보며 동재와 서재가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다.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소장 전적으로는 판본 90종 237책, 사본 32종 57책의 총 122종 294책이 있으며, 이중 ‘청금록 靑衿錄’·‘장수현도유안 長水縣都儒案’·‘유안 儒案’·‘수정향안 修正鄕案’·‘향교조례 鄕校條例’·‘선안 仙案’·‘향헌 鄕憲’ 등의 필사본은 이 지방의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능이버섯백숙’
냄새만 맡아도 기운이 솟아난다. 기력회복에 좋다는 부추는 산처럼 수북이 쌓여있다.
보기만 해도 이미 건강해지는 기분. 장수에서 이미 사계절 보양식으로 자리 잡은 ‘능이백숙’은 여름이 오기 전 꼭 먹어야할 보양식 중 하나다. 직접 키워 잡은 토종닭에 깊은 산중 공기가 좋은 곳에서만 3년에 한 번 정도만 채취가 가능하다는 귀한 버섯 중의 으뜸, 능이버섯이 들어가니 한 번만 먹어줘도 무더위는 끄떡없다.
토실토실한 닭다리 하나만 뜯어도 배가 부르지만, 능이버섯의 향과 부추의 식감, 닭의 담백함이 어우러진 국물 한 숟가락이면 젓가락을 멈출 수가 없다. 진~한 국물에 끓여낸 찹쌀로 만든 죽까지 먹고 나면 웃음이 절로 날 터.
■전복한우갈비탕
장수하면 ‘장수한우’아니던가? 명품 중에 명품인 장수한우에 전복까지 더 해지니 ‘허허’, 굳이 글로 써야 할까 싶다.
얼마나 끓여낸 건지 깊고 깊은 육수에 손바닥만큼 큼직한 한우 갈비가 뚝배기를 가득 채우고 그 위에 싱싱한 전북이 참을성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잘 익은 한우갈비는 식당만의 특제 소스에 찍어 먹으면 안 그래도 살았던 입맛이 더욱 살아나게 한다. 전복의 탱탱함은 어느 새 입안을 바다향으로 가득 메운다.
누가와도 취향 저격!! 갈비탕뿐만 아니라 소고기구이, 육사시미, 육회비빔밥 등 다양한 한우 요리도 판매하는 이곳에서 각자에 맞는 몸보신하고 여름을 맞이하길 적극 추천한다.
장수=송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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