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과 아동학대, 넘을 수 없는 벽인가?
가정폭력과 아동학대, 넘을 수 없는 벽인가?
  • 최낙관 독일 쾰른대 사회학박사/예원예술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 승인 2021.02.24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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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인간의 폭력성과 잔인성의 끝은 어디인가? 불과 몇 개월 전 폭력과 학대로 16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했던 ‘정인이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최근 익산에서 2주 된 갓난아이가 부모 학대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비정한 부모의 손에 의해 희생당한 가정폭력의 망령이 또 다른 어린 희생자를 만들어 우리의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부모이기를 거부한 가해자의 태도이다. 살인, 아동학대 중상해, 폭행 등 3가지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이들 부부는 어린 핏덩이가 분유를 먹고 토했다고 때린 것도 모자라 의식불명 상태에 있는 아이를 방치하고 병원이송이 아닌 ‘멍 빨리 없애는 방법’을 검색하는 등 엽기적 행각을 일삼았다. 심지어 119에 “아이가 침대에서 자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고 허위신고하고 출동한 구급대원을 속이기 위해 아이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등 은폐시도는 물론 결국 숨진 아이의 사망 책임을 부부가 서로에게 전가하는 등 패륜적 행위가 끝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언론을 통해 세간에 알려진 아동학대 행태는 가히 역대급이다. 2019년 기준 아동학대 행위자 중 75.6%가 부모라는 사실은 과연 우리가 부모 자격이 있는지 반문케 한다. 계모가 여행 가방 속에 아이를 집어넣어 살해하고 친모가 6개월 전 빈집에 아이를 혼자 버려두고 이사해 2살 아이가 숨진 채 미라 상태로 발견되는 등 아동학대가 여전히 독버섯처럼 산재해 있다. 국민의 법 감정에 미치지 못하는 법원이 처벌수위도 분명 한몫하고 있다. 예컨대 독일과 스웨덴은 아동학대치사에 살인죄를 적용하고 최대 징역 10년 등 중형을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아동학대로 아이가 사망하면 징역 30년 이상, 장애가 생기면 징역 20년 이상을 선고하고 있다. 우리는 어떨까?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처벌법 위반으로 전국 법원에 접수된 사건 267건 중 실형 선고는 33건으로 전체의 12.3%인 반면, 집행유예는 96건으로 이보다 3배가량 많다. 이러한 결과는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인 부모 입장을 주로 듣고 판단하는 재판부의 보수적 판단이 솜방망이 수준의 처벌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동학대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은 있는 것일까?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대책들이 나오지만, 언 발에 오줌누기식이다. 미국에서는 1980년 학계에서는 ‘부모면허제’ 도입을 제안한 적도 있다. 물론 이러한 급진적 제안이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부모에게 주목하고 부모교육이 확대되는 긍정적인 신호를 주기도 했다. 독일의 경우, 아동보호체계는 신고와 처벌보다는 예방과 지원에 방점을 찍고 있다. 과거 나치정부에 대한 반감, 예컨대 전체주의적 중앙정부의 통제와 감독 그리고 사회적 감시시스템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이 매우 강하게 작용했던 결과로 볼 수 있다. 그 결과 독일은 사후개입보다는 지역사회공동체 안에서 예방적 아동보호체계 구축을 강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주정부 산하 100년 전통의 ‘아동청소년청’(Jugendamt)이 있다. 이러한 장치는 일차적으로 통합적 가족지원의 후견인 역할을 충실히 하며 ‘사회악’인 아동학대 예방에 앞장서고 있다. 우리도 ‘제도를 믿지 인간을 믿지 않는다’는 독일의 경험에 주목하고 제도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국가와 지자체도 출산장려금을 걸고 서로 경쟁적으로 부모 만들기에만 열을 올리지 말고 ‘부모답게’ 살기 위한 부모교육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나를 되돌아보는 성찰과 반성이다. 어쩌면 내가 주위의 가정폭력과 아동학대를 ‘관음증’ 환자처럼 즐기고 있지는 않았는지 스스로 확인해야 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최낙관<독일 쾰른대 사회학박사/예원예술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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