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그 날의 열망을 되새기며
숭고한 그 날의 열망을 되새기며
  • 이윤심 전북동부보훈지청장
  • 승인 2021.02.2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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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심  전북동부보훈지청장

살을 에는 추위를 이겨내고 봉오리를 터뜨린 매화가 봄의 소식을 전해오는 2월의 끝자락, 사뭇 평화로운 전주 풍남문 거리를 거닐며 100여년 전의 뜨거운 함성이 터져나오던 모습을 겹쳐본다.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이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탑골 공원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에 들어갔다. 동시에 우리나라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알린 온 겨레의 항일 민족 독립운동이 물꼬를 트고 국토 전역으로 힘차게 뻗어나갔다.

서울 태화관과 탑골 공원의 소식은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인쇄소 ‘보성사’ 사무원이었던 인종익 선생의 발을 타고 독립선언서 1700여장과 함께 전주 천도교 교구실에 전달되었다. 곧 거사에 대비하여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기독교와 물밑에서 논의가 진행되었다. 종교계와 학생들을 중심축으로 하여 3월 13일, 전주 남문 일원에서 장날을 기해 대규모 만세운동이 계획되었다. 신흥학교와 기전학교의 학생들은 학교 지하실 호롱불 밑에서 태극기 및 선언서 등을 준비하며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예정일인 13일 일본경찰의 삼엄한 경계 속에서 채소가마니에 숨긴 태극기를 남문시장까지 옮겨왔다.

그리고 이날 정오 남문에서 울린 인경소리를 신호로 일제히 행동이 개시됐다. 천도교, 기독교, 신흥학교 및 기전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150여명이 남문시장부터 태극기를 들고 일제히 “대한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부르짖었다. 기전·신흥학교 학생들은 미리 준비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다른 이는 태극기를 양손으로 흔들며 “대한사람으로서 만세를 부르지 않는 사람은 반역자!”라고 독려했다. 대열은 삽시간에 불어났고, 거리는 태극기와 독립 만세의 물결로 넘쳐났다.

우편국 앞에서 총검을 휘두르는 일본경찰과 밀고 밀리는 승강이가 벌어지고, 급기야 시위를 펼치던 군중을 향해 발포하는 만행이 자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대열은 자정을 넘겨 다음 날 새벽 2시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이날 전주 읍내에서 검거된 인원만 300여명에 이르렀다.

이처럼 우리의 선열들은 일본의 총칼 앞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고 오히려 조국강토를 뒤덮는 함성과 독립을 향한 열망으로 세계인의 가슴에 우리의 저력과 독립의 의지를 깊게 심어주었으며, 결국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자유를 되찾았다.

그리고 3.1운동의 굳건한 정신은 우리 겨레의 가슴속에 면면히 이어져, 해방 후 극심한 좌우대립과 혼란을 극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6.25전쟁으로 황폐화된 터전 위에서도 눈부신 경제발전과 함께 민주화를 이룩하는 힘이 되었다. 나아가 현재 전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에서도 방역의 모범을 보여주며 극복해 나가는 근간이 되었다.

“과거의 유산은 미래의 수확을 가져오는 씨앗”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거울이 되며, 또한 용기와 힘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위대한 역사와 강인한 힘을 가진 민족이다. 값진 선열들의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공훈을 되새기고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실천하고 또한 후손에게 그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현재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몫일 것이다.
 

이윤심 <전북동부보훈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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