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43) 정원도 시인의 ‘가수의 꿈’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43) 정원도 시인의 ‘가수의 꿈’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1.02.2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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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의 꿈’

 

- 정원도

 

 

키가 너무 작다고 키득키득

“난쟁이 뭐만하다”고

걸핏하면 동네 어른들 입에 오르내리던

토골댁 둘째 아들

학교도 다니는 둥 마는 둥

농사짓는 데는 저보다 백배 더 중한 소 한 마리

풀 뜯어 먹인다고 몰고 나가더니

아버지 몰래 그 소 팔아 가수의 꿈을

결행했다

비명에 간 배호 노래가

청춘들의 가슴을 저미던 때

라디오 지방방송 음악프로에

간간히 몇 번인가 흘러나오더니

소 풀 뜯어먹는 소리로 부르던

애잔한 노래도 막 잊혀져갈 무렵

아침마다 더운 김이 피어오르던 외양간에는

들일 나가야 하는 소는 보이지 않고

그 소와 맞바꾼 노래조차

종적을 감추었다

 

<해설>

언젠가 지인이 ‘배호 가요제’를 연다고 초청장을 보내 와 자세히 보니 횟수가 무려 20여년을 훌쩍 넘었더군요. 배호 노래를 구성지게 잘 부르던 동창에게 참가해보라고 전화를 했더니 그 동창은 한 발 더 나아가 모창 대회만 해도 전국에 수십 개도 넘는다고 하더군요. 우리 집은 어머니가 노래를 잘 불러 별명이 파랑새였는데, 노래자랑에 나갈 때마다 쌀이나 밀가루나 양은냄비를 타오던 기억이 나는군요.

시골에서는 형편이 가난해서 상급학교를 못 가는 경우 공장에 가려고 기다리며 먼저 집안일을 거들게 됩니다. 소 뜯기는 일부터 시작하지요. 소를 뚝방으로 끌고 가 말뚝을 박아 놓고 보리피리도 불기도 하고 단수수를 씹기도 하면서 무료함을 달래거나 목청껏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이렇게 노래를 부르다가 토굴댁 둘째 아들처럼 급기야 가수의 길에 나설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아버지가 우시장에 가서 소를 파는 날을 기다리는 게 보통인데, 토굴댁 아들은 배짱 좋게 아버지 몰래 직접 소를 팔아 도망 가버렸어요.

“학교도 다니는 둥 마는 둥/농사짓는 데는 저보다 백배 더 중한 소 한 마리/풀 뜯어 먹인다고 몰고 가서” 결국 가수가 되었나 봅니다. “라디오 지방방송 음악프로에/간간히 몇 번인가 흘러나오더니/(…)” 종당에는 그 소와 맞바꾼 노래조차 종적을 감추고 말았군요.

이제는 그 토굴댁 아들도 나이가 들었으니, 이런 노래나 부르지 않을까요. “나 혼자 외로워지면 그때 빗속에 젖어 서글픈 가로등 밑을 돌아서며 남몰래 흐느껴 울 안녕(…)”과 같은.

누구나 열정으로 불태웠던 빛바랜 꿈 하나쯤은 가슴 한쪽에 쟁여두고 살아가지 않나요? 가끔 그 날을 돌아보며 그리워하면서요.

 

강민숙 시인 /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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