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화를 찾아가는 술 이야기 <2> 제사는 맑은 술이 아닌 탁한 술이 전통이다
새로운 문화를 찾아가는 술 이야기 <2> 제사는 맑은 술이 아닌 탁한 술이 전통이다
  • 이강희 작가
  • 승인 2021.02.14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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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가 지났다. 코로나19사태의 장기화로 인해 명절의 분위기를 내기에는 제한이 많았지만 가정마다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었을 것이다. 명절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 유교적인 관습으로 알려져 있지만 제사를 지낼 때의 법도와 기준을 유교에서 정했을 뿐 원래 제사는 동서양이 모두가 가진 문화다. 기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시절 홍수와 가뭄은 신이 내리는 벌에 가까웠다. 적절한 비가오고 알맞은 일조량으로 곡식이 잘 자라면 신에게 감사하기 위해 명절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종의 추수감사다. 우리고유의 명절이기보다는 우리의 기후와 달력(음력)에 맞게 날짜를 정했다고 볼 수 있다. 달력이 순환해서 새롭게 바뀌는 해를 기념하는 것이 새해, 즉 설날이다. 추석과 마찬가지로 설날도 달력을 기준으로 맞이한다.

이런 명절에 제사를 지내면서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술이다. 술은 신성시되는 행사 때 사용하던 음료로 ‘알코올’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 술로 인해 오는 취기를 신을 접하는 행위로 간주하기도 했다. 추수시기와 붙어있는 추석은 햅쌀로 만든 떡과 밥을 나누어 먹는 것이다. 그래서 추석에 사용되는 술도 햅쌀로 만든 술을 사용하는 것이 오랜 세월 내려온 전통이다.

그런데 햅쌀로 만든 술이다 보니 막걸리 형태의 탁한 술을 사용해왔다. 도구와 기술이 부족하던 시절이기 때문에 탁도가 높은 술을 빚어 맑은 청주로 만들어내기까지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랬기 때문에 갓 빚은 새 술을 사용하던 명절에는 청주를 사용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차례 상을 점령한 것은 청주가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의례 제사상에는 맑은 술을 사용해야한다는 검증되지 않은 지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가 술을 이야기할 때 ‘정종’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임금 ‘정종(定宗)’말고 ‘정종(正宗, 마사무네, まさむね)’이다. 일본의 청주인 사케의 한 브랜드였지만 워낙 많이 팔려 사케의 대명사가 되었고 해방이후에도 청주는 모두 정종으로 통칭해서 불러왔다.

왜국(倭國)은 자신들이 서구열강에 당한 불평등조약을 적용시킨 강화도조약을 조선과 맺는다. 1876년 이후로 이들은 최혜국대우를 받으며 특권을 누린다. 이는 상업 활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1883년 1월 부산에서 시작된 일본식 청주(淸酒)공장은 일본의 쌀을 절약하기 위해 조선 쌀로 술을 빚으려는 일본인들의 술책에서 시작되었다. 쌀 전체를 사용하는 조선청주와 달리 도정을 많이 한 쌀로 술을 빚던 사케는 술을 빚기 위해 소비되는 쌀의 양이 많았다. 일본인의 식량을 위해 쌀을 절약하고 소모량이 많은 술빚기용 쌀은 조선의 것을 사용해 강점되기 전부터 조선의 쌀을 간접적으로 수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의 조선인들은 제사를 많이 지내다보니 주로 집에서 술을 빚어 사용했다. 일제는 조선에 통감부를 설치하면서 시작된 침탈과정에서 주세법(酒稅法)을 만들어 세금을 걷으려고 했다. 이를 위해 술을 통제해야 했다. 그래서 술은 일반가정에서 빚지 못하게 했고 술 공장에서만 만들어 팔도록 제조면허제를 시행한다. 더불어 조선에 있던 일본인이 세운 술 공장의 생산량을 늘린다. 술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상에 사용하는 술은 많은 술을 사용해야 조상들이 좋아한다는 풍문을 만들어 돌리면서 탁주보다는 일본인이 공장에서 만든 술을 사도록 유도했다. 이때 국정종주(菊正宗酒)라는 술이 인기를 얻으면서 대중적으로 팔렸다. 이 모든 과정은 일본이 술로 세금을 원활하게 걷기위한 여러 계책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상술이 지금까지 이어져와 우리의 조상들이 새 술을 받기보다는 숙성된 술을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이 전통인양 이어오고 있는 역사인식을 우리 세대에서 바꾸지 않는다면 일제의 잔재가 후대에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물론 문화는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바꾼 게 아니라 바꾸도록 강요된 것은 구분해서 원래의 자리로 되돌릴 줄 아는 것도 문화를 만들어가는 참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글 = 이강희 작가
 
 ◆2019년 세종도서 선정된 ‘맛있는 맥주 인문학’을 쓴 이강희 작가는 금융과 술을 주제로 지면과 화면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외에 도서관과 기업체에서 술과 관련한 인문학 강연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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