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41) 박진호 시인의 ‘녹슨 못’
<강민숙의 시가 꽃피는 아침> (41) 박진호 시인의 ‘녹슨 못’
  • 강민숙 시인
  • 승인 2021.02.07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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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못’

 

- 박진호 시인

 

녹슨 못 하나 하나 펴서 박는 목공의 손놀림

새 못보다 녹슨 못이 좋다는 듯

모아 놓은 공구함의 녹슨 못들

세월의 흐름 속에 생기는 녹

물 먹은 존재로서의 녹

나무와 나무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힘이 녹인가

 

녹슨 못 하나 찍어 논 흑백 사진

삶의 여정을 잘 소화한 인간의 모습이다

성한 곳 없이 부식된 못 하나에서 느끼는 카리스마

신의 은총이 내린 인간의 성숙함

녹슨 못

 

<해설>

우리 주변에 흔한 것이 못이지만 대개는 못의 존재에 대해 인식을 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큰 못이든 작은 못이든, 새 못이든 녹슨 못이든 굳이 구별도 하지 않습니다. 이는 못이 지닌 부동의 속성 때문인 듯합니다. 못은 박히는 순간부터 온전히 그 무게를 부동의 자세로 버티면서 존재합니다. 그래서 많은 시인들이 못을 주제로 시를 씁니다. 저도 못에 관한 시를 여러 편 썼습니다. 제게는 이런 시가 있습니다. “못 하나 뽑는 일이/ 얼마나 아픈 일인가를/ 못을 뽑아 본 사람은 안다./ 장도리와 망치를 불끈 들고/ 못의 목을 겨누어 뽑아 본 사람은/ 못의 흔적 그 휑한 자리를 안다./ 누구도 채울 수 없는 자리/ 사람이 못이었음을 안다./ 언젠가 한 번은 뽑히고 말/ 그 자리에 나는 오늘 내 삶의 외투를 건다.”

나무나 벽에 못을 박을 때, 어떤 못을 사용할까 신중하게 고르는 것도 잠깐, 한 번 박히면 쉽게 뺄 일이 없습니다. 더구나 굽은 못은 쉽게 뽑히지도 않고, 설령 뽑히더라도 빈자리가 휑하니 남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가슴 아픈 상처를 못에 비유합니다. “네가 내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면서 그 사람을 원망하고 미워하면서도 그 못을 쉽게 뽑지 못하고 가슴 아파하며 못과 함께 살아가지요.

시인은 “녹슨 못”에 대해 못을 관통하는 힘은 세월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뾰족한 쇠못을 통해 “세월의 흐름 속에 생기는 녹, 물 먹은 존재로서의 녹, 나무와 나무를 잡고 있는 힘”이 녹슨 못이라고 하네요. 못을 녹슬게 만드는 힘이 비단 습기 때문만은 아니겠지요. 우리의 삶도, 슬픔과 외로움이 가슴을 녹슬게 합니다. 그러나 때로 그 슬픔과 외로움이 삶의 무게와 인간의 성숙함을 느끼게도 하지요

이 시도 녹슨 못에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삶의 여정을 잘 소화한 인간의 모습이 녹슨 못”이라고 인식하면서 심지어 신이 인간에게 내린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있네요.

누군가가 박은 은빛 도는 새 못보다, 녹슨 못을 볼 때 우리 마음이 왠지 편안해지는 것은 바로 신이 내린 은총 때문일까요.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녹슨 못이 많이 있듯, 내 가슴에 깊이 박힌 녹슨 못을 찾아 어루만져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강민숙 시인 /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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