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전북문학기행> 22. 내 봄날의 고향이 맺힌 순창군 쌍치면 통시암 - 신형식 ‘웃동네 통시암’
<2020 전북문학기행> 22. 내 봄날의 고향이 맺힌 순창군 쌍치면 통시암 - 신형식 ‘웃동네 통시암’
  • 이휘빈 기자
  • 승인 2021.02.07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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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식 시인이 살던 집과 통시암의 흔적

 순창군 쌍치면은 추령천이 에워싸는 마을이다. 국도를 따라 쌍치면으로 가는 길에, 2월의 나뭇가지들은 묵은 갈잎으로 새로운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희끗희끗 남은 눈자락들을 제외하면 쌍치면의 길들은 자박자박 들려오는 어르신들의 신발자국 소리와 산비둘기 소리로 차 있었다. 쌍치면은 걸어서 20분이면 마을 전체를 훑어볼 수 있지만, 쌍치면에 머물면 하루를 이 곳에서 보내고 싶어질 만큼 자연의 작은 소리들이 가까이 서려있다.

 신형식 시인은 순창군 쌍계면에서 자랐다. 전북문화관광재단이 출간한 ‘들어라 전라북도 산천은 노래다’ 순창편에 실린 ‘웃동네 통시암’은 그가 생각하는 고향 전경을 펜화처럼 새겼다.

 시는 ‘고향집 바로 옆에 ‘통시암’이 있습니다. // 간이 상수도를 설치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동네 사람들이 보물처럼 여기던 공동우물입니다. 웬만한 가뭄에도 끄덕없고 물맛이 기막혔기 때문입니다’로 시작한다. 이 우물은 단순히 우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3연에서 ‘대청마루에 턱 누워 있노라면 누구네 모내기가 언제고,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싫어하고 다 털어놓는 물 긷는 동네 아주머니들의 이야기가 우리 집 것이었으니까요’ 라는 문장으로, 시인에게 그 우물은 이야기가 모이는 정경이었다. 다만 신 시인이 짚어준 장소에서 그 우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신형식 시인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통시암에 대해 “이야기가 모이고, 세상 살이가 모이는 곳”이라며 그 정경의 아름다움을 설명했다. 신 시인은 “시에 나오는 것처럼 마을의 1년 일상사와 이야기들이 모이고, 그 주변에 개나리들이 번져 나는 봄을 다 가진것처럼 행복했다”고 말했다.

 신 시인은 1970년 중학교를 졸업한 뒤 전주로, 서울로, 그리고 미국 뉴욕과 보스톤에서 학업을 마치고 1985년에 귀국했다. 시인은 “그때부터 역방향으로 서울-대전-전주로 삶의 근거지를 바꿨다. 그렇게 오랜 기간 외지를 떠돌며 고향에 대한 애틋함을 키운 것 같습니다”며 “제 시집에 고향을 소재로 한 시가 유난히 많은 것도 그 탓인지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어린 치어가 강과 바다로 떠났다가 거슬러 오듯이, 신 시인도 추령천을 거슬러서 순창군 쌍치면으로 오는 것일까. 시인이 어렸을 적 뛰어다녔을 작은 골목길을 헤메며 쌍치면의 소리를 들었다. 마을 주민들의 소복한 발걸음 사이로 봄은 겨울 사이에서 단단히 움트고 있었다.

 이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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