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서정환 수필가
  • 승인 2021.02.0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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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 선생. 그는 이미 죽음을 예감했단 말인가? 지난 달 20일 아침 아홉 시께였다. 느닷없이 “다음 학기에는 강의를 못하겠으니 후임을 선임하라.”고 통고한다. 누구, 누구를 거명하면서 이 세 사람 중에서 선정하면 될 것이라고도 했다. “갑자기 무슨 말씀입니까?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느닷없는 통고에 어리둥절해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몇 번을 다구쳐 물었다. “지금 병원에서 검진 중이다.”라는 말로 전화는 끊겼다. 심각한 병은 아닌 것 같은 목소리였는데, 강의 욕심이 많은 분이 안 하겠다고 하니 문병은 한번 가야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25일 월요일. 문인 한 분과 같이 병원을 찾아갔다. 그 날이 마침 퇴원하기로 된 날인데 다시 검진을 하고 있다고 한다. 면회 신청을 했는데 코로나19 검사를 먼저 받고 이상이 없으면 면회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병명은 무어냐고 물어도 모른단다. 코로나 검사를 지금 받으면 결과는 내일 나온다고 하니 환자를 면회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코로나 검진을 받고 내일 오는 것도 뭣하고 해서 한 시간여를 둘이 이곳저곳 찾아가 물어보다가 괜찮겠지 하면서 돌아왔다.

28일 오전. ‘김학 선생 작고’라는 마른하늘에 벼락이 떨어졌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도무지 어찌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사무실만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헤매고 있었다. 이어 제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모두들 “왜 갑자기 돌아가셨냐? 코로냐 때문이냐.” 묻는 등 황망한 가운데 하루를 보냈다.

사람이 살았다고 할 수가 있는지 허퉁하고 가슴 한쪽이 텅 빈 것 같아 갈 바를 못 잡았고 있었다. 코로나19가 극성인데도 원로 한 분이 나서서 문상은 가야한다고 챙겨주셨다. 우리 문단에는 원로분이 있어 문단이 바르게 돌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따라나섰다.

장례식장에는 문상객이 많이 와 있었고 미국에 살고 있는 큰아들은 곧 도착할 것이라고 한다.

사모님으로부터 그동안의 경과를 소상하게 들을 수 있었다. 김학 선생이 금요일 저녁에 거실에서 TV를 보다가 쓰러져 방으로 기어오다시피 들어와 잠이 들었다고…. 아침에 일어나 어지럽고 체한 것 같아 병원에 갈 것을 상의했는데 토요일에는 의사들이 싫어하니 월요일에 가자고 했다고 한다. 전북대병원으로 가려고 했는데 코로나19 검사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에 가까운 D병원을 택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뇌경색이었다고 한다. 괜찮은 것 같아 25일 월요일 퇴원하기로 했는데 병세가 악화되어 다시 검진을 받았고 그 다음, 다음날 심정지가 되어 심폐소생술을 한 시간여를 시행했으나 끝내 숨을 거두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문상객들 모두가 일찍 대처했더라면 돌아가지 않을 분인데 안타깝다고 가슴을 쳤다. 한숨만 나왔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김학 선생이 마지막 작품집이라면서 USB에 담아 놓았으니 150부만 어느 출판사에 가서 찍으라고 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면서 퍼뜩 생각난 것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소설이 떠올랐다. 2011년 맨부커상을 받은 이 소설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출신 줄리언 반스의 작품이다. 이 소설은 나중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호평을 받았다.

일부러 예감에 맞추려고 쓰러져 기다시피 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으니 간과하고 토요일은 응급실 의사들만 있으니 월요일에 가자고 했을까? 절대 그럴 리는 없다. 그런데도 예감에 딱 들어맞게 되는 것은 운명일까? 아니면 사주팔자에 그렇게 정해진 것인가.

 

서정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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