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현충시설 - 오수 3.1독립운동 기념탑
우리고장 현충시설 - 오수 3.1독립운동 기념탑
  • 전북동부보훈지청
  • 승인 2021.01.1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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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보훈
오수 3.1독립운동 기념탑

오수 3.1독립운동 기념탑은 오수면을 비롯한 임실군 전역에서 전개된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기단의 앞면에는 오석판에 ‘충의(忠義)’라고 새겨져 있고, 왼쪽 옆면에는 이기송·허박·오병용·이만의 등 애국지사 44인의 명단이, 오른쪽 옆면에는 임실 지역의 독립만세운동 상황과 건립 취지가 새겨져 있다.

1919년 3·1독립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오수보통학교(현 초등학교) 교사인 이광수는 서울에서 천도교 대표 오세창을 만나서 만세운동에 관한 지시를 받고 내려왔다. 3월 10일 10시경 교사 이광수는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을 이끌고 거리로 뛰쳐나와 만세를 불렀으며, 일본인 교장과 다른 교사들의 만류로 학생들의 만세운동은 진정되었으나 학생들의 만세운동은 독립만세운동이 임실군 전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임실 지역의 유지였던 이기송과 오병용·이만의 등은 장날인 3월 23일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고, 거사 당일 오후 2시 장터에 모인 군중 앞에서 이기송이 독립운동의 당위성을 연설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자 군중도 따라 외치며 장터를 행진하였다.

 시위 군중이 800여 명으로 불어나 기세를 올리자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이기송을 연행하였고, 이에 격분한 80여 명이 주재소로 몰려가 그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자 위세에 눌린 일본인 순사가 그를 석방하였다. 2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 군중은 일본인 상점을 파괴하고 면사무소를 점령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다가 이날 저녁 증파된 일제 군경의 무차별 발포로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해산하였다. 그러나 300~400명씩 무리를 지어 다음날 새벽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계속하였다.

1991년 1월 1일 오수 3·1독립운동기념탑 건립추진위원회에서는 임실 전역에서 전개된 3·1운동에 참여한 이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추모하기 위해 이 탑을 세웠다.

 ▲위치=전북 임실군 오수면 오수리 산3
 

 전북동부보훈지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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