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호 오리
수덕호 오리
  • 박은숙 원광대 가정교육과 교수
  • 승인 2021.01.1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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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수덕호에는 지난해 초봄부터 오리가 살고 있다.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자 관계자가 오리를 들여놓았다고 했다. 다섯 마리를 주문했는데, 오리 주인도 원광인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다며 다섯 마리를 더해 열 마리를 가져왔다고 한다. 나는 그 관계자의 수요자 맞춤형 서비스와 오리 주인의 심성에 감동했다. 새끼 오리들이 호수에 떠 있는 모습은 너무도 평화로워 보였다. 오리들을 보는 자체가 힐링 타임이었다.

일에 쫓기다 여름이 되었다. 보직 임기를 마치고 대나무 마디 같은 여유가 생겨 수덕호를 찾았으나 오리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리들이 스스로 떠나갔는지, 안키우기로 했는지, 질병으로 죽었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어느 날 캠퍼스에서 우연히 만난 관계자는 오리들이 더위를 피해 타임스테이션 그늘에서 아래에서 쉬고 있다고 했다. 안심이 되었다. 타임스테이션은 수덕호 가운데에 섬처럼 떠있는 커피숍이다. 그 관계자는 오리가 보고 싶으면 부르라고 했다. ‘꽥꽥’하고 부르면 ‘꽥꽥’하며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내가 ‘꽥꽥’하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왔다.

석양이 드리워지는 일요일 저녁에 수덕호에 갔다. 주변에 사람들은 없었지만 오리를 부르기에는 매우 쑥스러웠다. 작은 소리로 오리를 불렀으나 반응이 없었다. 좀더 큰 소리로 오리를 불러도 마찬가지였다. 용기를 내어 더 큰 소리로 오리를 불렀다. 그랬더니 오리들이 ‘꽥꽥’하면서 유유히 헤엄쳐 내 앞에 나타났다. 신기했다. 나는 손을 흔들어 오리들에게 반가움을 표했다. 그 후 가끔 해 질 녘이면 수덕호를 찾았고, 나의 오리 부르는 소리는 크지도 작지도 않고 적당해져 갔다. 오리와 가까워지면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오리들을 부르면 꼭 한 마리만 응답하는 것이었다. 리더 오리인 것 같았다. 그 오리는 앞장서지 않고 중간쯤 위치하면서 헤엄쳐 왔다. 그 오리는 먹이도 다른 오리들처럼 먼저 먹으려고 서두르지 않았다.

어느덧 가을이 되었다. 오리와의 만남은 곧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내가 오리에게 주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집에 있는 보리를 가져다주었다, 오리들이 미처 먹지 못하고 가라앉는 보리는 호수의 수질에 악영향을 줄 것 같았다. 보리를 튀밥으로 만들기로 했다. 보리에 흑미도 넣었다. 튀밥집에서는 오리에게 줄 것이면 단맛은 넣지 않겠다고 했다. 이래저래 오리 간식은 건강식으로 준비되었다. 튀밥의 양은 상당했다. 주말 저녁에 튀밥을 작은 지퍼백에 나눠 넣었다. 튀겨진 흑미의 검은 입자들이 거실에 마구 흩날렸다. 청소기를 사용해도, 비로 쓸어도, 걸레로 닦아도 흑미 입자는 풀풀 날렸다. 그러나 오리들을 위해 기꺼이 감내하고 싶은 즐거운 성가심이었다.

보리 튀밥을 전달하는 과정은 불통의 연속이었다. 단톡방에 오리 간식을 드리겠다고 올리고 며칠 후에 전달했는데, ‘간식인 줄 모르고 제가 먹었어요. 꽥꽥!’하는 글이 올라왔다. 한 지인에게는 오리 먹이라며 사무실에 전달했는데, 직원이랑 잘 나눠 먹었다는 연락이 왔다. 오리 먹이라고 했거늘 본인도 모자라 직원과 나눠 드셨냐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직원이 퇴사하면서 튀밥만 전달되고 내용은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직원은 튀밥을 집에 가져갔고, 직원 아버지는 튀밥을 드시면서 달지 않아서 아주 좋다고 하셨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소통에 매우 문제가 있음을 여실히 느끼면서도 즐거워했다.

겨울 초입에 들어서자 새끼 오리들은 몸집이 커다란 성인 오리로 성장하였다. 인수공통전염병을 우려하여 조류독감, AI 검사를 실시하였고 모두 음성 판정이 나와 오리들은 수덕호에 계속 살게 되었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수덕호는 얼음으로 반쯤 덮혀 있었고, 오리들은 얼음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어떤 오리는 얼음에 가슴을 대고 있었고, 어떤 오리는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고, 어떤 오리는 두 발로 서 있었다. 얼음 위에 서 있는 오리의 가느다란 주황빛 발목은 애처로워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정해 보였고, 평화로워 보였다. 얼음 위 오리 모습은 또 하나의 힐링 장면을 연출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사귄 오리들은 이젠 내가 부르지 않아도 나에게 다가온다. 수덕호 오리들은 나의 친구라기보다는 스승이었다. 따뜻한 배려가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준다는 것, 리더는 구성원들을 위해 헌신하지만 앞장서지 않는다는 것, 어떠한 상황에도 구성원들끼리 오순도순 정답게 생활한다는 것, 의사소통은 쉽지 않다는 것, 그럼에도 마음의 소통은 서로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을 오리를 통해 배웠다. 팬데믹 시대이지만 수덕호 오리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하다.

박은숙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가정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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