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에 갇혀버린 여성에 숨을 불어넣다…여성문학연구자·여성예술인들의 비평활동 활발
작품 속에 갇혀버린 여성에 숨을 불어넣다…여성문학연구자·여성예술인들의 비평활동 활발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1.01.1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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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공동체 지지배배’가 펴낸 ‘문학으로 잇다 - 공감을 넘어 통감으로(인간과문학사)’
‘지식공동체 지지배배’가 펴낸 ‘문학으로 잇다 - 공감을 넘어 통감으로(인간과문학사)’

 최근 문화예술계에서는 여성 작가와 여성서사의 작품이 굉장히 풍성했다. 출판계는 물론 영화와 미디어, 공연 등의 영역에서도 여성들의 주체적인 이야기를 많이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캐릭터의 도움 없이는 문제해결이 되지 못하는 줄거리가 주류라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은 여전하다. 여성서사를 어떤 범주로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현재진행형이다. 더 많은 연구와 비평문화가 자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북 지역에서도 여성서사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비평하는 모임이 활발해지고 있어 주목된다. 이들 모임은 단행본과 자료집, 유튜브 등을 통해 연구 결과물을 공유하며, 문학·대중 서사에서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배제되는 일이 없기를 주문한다.  

 ▲지식동동체 지지배배, 재난 이후를 사유하는 기록·비평집 펴내 

 “가부장제의 원리와 체제 속에서, 혹은 국가적 재난 속에서 송두리째 삶을 빼앗기고도 이미 잊어버렸거나 잊히고 있는, 잃어버렸거나 잃어가고 있는, 소외되고 배제된 존재의 삶에 주목했다.”

 전북지역 여성문학연구자 집단인 ‘지식공동체 지지배배’는 ‘문학으로 잇다 - 공감을 넘어 통감으로(인간과문학사)’를 펴냈다.

지식공동체 지지배배 회의 장면
지식공동체 지지배배 회의 장면

 이 책은 근현대사에서 배제되고 잊힌 존재들의 문학적 기록을 찾아 연구자별로 그 재현 양상을 진단하고 사회적 의미를 밝힌 기록·비평집이다. 김은혜(문학/만화 연구노동자), 유인실(문학평론가), 이숙(문학연구자), 최은영(영상문학연구자), 최정(극작가) 등 연구자들의 글을 2편씩 총 10편을 수록했다. 여성으로, 문학연구자로 살아오면서 느꼈던 신진 여성문학연구자들이 동시대적 삶과 문학을 연결해 폭넓게 공부하려는 의도에서 의기투합한 산물인 것이다.

 책은 총 3개의 챕터로 구성됐으며, 1부 재난 ‘이후’의 문학, 2부 ‘지금, 여기’의 여성서사들, 3부 재난 ‘이후’의 문학 오픈토크로 나뉜다.

 1부에서는 노경식의 희곡 ‘달집(1971)’을 통해 전쟁과 여성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분석하고, 만화 ‘내 어머니 이야기’를 통해 남성이 겪은 전투의 경험뿐만 아니라 여성이 겪은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기억과 참상을 응시한다.

 김숙의 소설 ‘뿌리 이야기(2015)’와 ‘한 명(2016)’을 통해서는 역사적 재난을 무방비 상태로 견뎌야 했던 여성의 생존서사를 통해 인간의 본질과 존엄을 되묻고, 허수경의 연작시 ‘원폭수첩(1988)’을 통해 국가의 공식적 기억에서 소외되거나 은폐 축소된 피폭자들의 삶을 기억하고자 한다. 영화 ‘연가시’, ‘감기’, ‘부산행’을 통해 사회적 재난으로서의 감염에 주목한 글은 더 이상 코로나 이전의 세상으로 갈 수 없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2부에서는 최근 우리 사회에 정점이 되고 있는 여성 문제들이 문학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다룬다.

 강화길의 소설 ‘다른 사람(2017)’을 통해 여성 문제에 대한 인식 변화의 의미를 포착하고, 영화 ‘월하의 공동묘지(1967)’와 ‘여곡성(2018)’ 등의 작품을 다루며 여성은 왜 귀신이 되어야 복수하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배삼식의 희곡 ‘먼 데서 오는 여자(2014)’를 통해 여성의 몸에 각인된 근현대사의 상흔에 주목한다.  

 더불어 지난해 10월 코로나19 정국 속에 이들 연구자와 시민들이 만난 담론 현장의 기록도 수록했다. 이 책은 책방놀지, 토닥토닥, 물결서사 등 전주지역의 동네책방과 신아출판사에서 구입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여성서사가 필요하다…아트체인지업 ‘에이~이거 그냥 예술이에요’ 

 “여성의 삶이라는 작품의 키워드와는 다르게 효, 지고지순한 사랑, 정조라는 작품의 주제에 가려져 주인공의 삶은 희석되거나 고정된 성역할을 수행하는 수동적 인물로 그려지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여성서사가 필요하다.”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가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고전작품 속 여성캐릭터를 다시 읽으면서 통쾌한 질문을 던진다. 지역문화예술계 다양한 장르 속 여성캐릭터에 대한 고민과 성찰을 유도하고, 주체적이고 입체적인 여성캐릭터를 창작하는 여성서사 부흥을 꾀하고자 머리를 맞댄 것이다.

전북문화예술인연대 아트체인지업 ‘에이~이거 그냥 예술이에요’촬영 후 기념사진
전북문화예술인연대 아트체인지업 ‘에이~이거 그냥 예술이에요’ 촬영 후 기념사진

 송원 연출가와 홍윤서 기획자를 중심으로 서서희(성악가), 설윤성(무용수), 전은희(소리꾼), 최미향(배우), 최아현(소설가) 예술가가 참여해 유튜브와 자료집 등을 통해 공개한 작품 ‘예이~이거 그냥 예술이에요’는 딱히 정의될 수 있는 장르는 없지만, 즉흥극과 페이크다큐 비평극, 다원예술 그 중간 어디 즈음에 있는 예술작품이다.

 영상 속에서는 서로 연고가 없는 다섯 명의 인물이 여성캐릭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작가 송원의 작업실에서 만난다.

 사랑하는 애인과 아버지를 죽이고 그로 인해 미쳐버린 희곡 햄릿 속 오필리어, 권력형 성폭력의 피해자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던 춘향전 속 성춘향, 타인의 음모와 함정, 오해와 시기로 죽음을 선택한 발레 백조의 호수 속 오데트, 사랑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변절한 남편으로 인해 큰 상실감에 빠져 할복하는 오페라 나비부인 속 초초상, 작가의 시선에 의해 자신의 삶을 향변조차 할 수 없었던 B사감이다.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가 전북문화관광재단의 온라인미디어예술활동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예이~이거 그냥 예술이에요'자료집 표지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가 전북문화관광재단의 온라인미디어예술활동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한 '에이~이거 그냥 예술이에요' 자료집 표지

 시공간을 초월해 한 자리에 모인 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작품 속 자신의 모습을 복기하고 스스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기본값으로 존재했던 시대에 태어난 인물들의 이야기를 2020년을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 살펴보는 작업은 어렵고도, 불편한 지점이 많이 보였다는데 참여예술가들은 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예술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상황과 여성캐릭터들에 감정이입을 하는 모습을 넘나들면서 작품 속 그녀들의 이름을 다시 호명한다. 춘향이가 차라리 흉악한 악물의 딸년으로 기억되기를, B사감을 외모로만 품평하지 말고 그만의 이름을 붙여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최미향 배우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더 많은 예술인과의 연대를 활발히 해야겠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모두의 예술은 기존의 낡은 방식처럼 성차별주의가 만연하고 잘못된 통념으로 가득 찬 작품이 그대로 공연되고 소비되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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