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성적 충동’
‘야성적 충동’
  •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 변호사
  • 승인 2021.01.1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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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년 전의 일이다. 교도소에 수감된 의뢰인이 피해자와 형사 합의를 하고 싶다고 했다. 피해자가 요구하는 금액과 의뢰인이 가진 돈은 차이가 꽤 컸다. 아무래도 합의는 어려울 듯싶어 조심스레 여윳돈이 있냐고 물어봤다. 가상화폐에 투자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기억이 나서다. 의뢰인은 중형이 예상됨에도 어쩔 수 없다며 체념하듯 말했다.

  “돈으로 바꾸고 싶어도 본인확인절차 때문에 저 아니면 가상화폐를 인출할 수도 없는걸요.” 사실인지 모르겠으나 당시 가상화폐의 가치는 꽤 컸지만, 꼼짝없이 형기를 마친 후에나 돈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었다. 최근 가상화폐가 급등하고 불현듯 예전 그 의뢰인 생각이 나서 당시 그가 가지고 있던 가상화폐의 가치를 셈하여 보았다. 여전히 보유하고 있었다면 그는 엄청난(?) 부자가 되어 있었을 것이지만, 형기를 마친 후 계속 보유했을지는 알 수 없다.

 3년 전 가상화폐 열풍을 주도했다. 가치가 폭락하여 주목을 받지 못했던 비트코인 등이 다시금 급등하고 있다(전북도민일보 2021. 1. 7.자 기사 참조). 7일자 도민일보 기사가 올라간 이후 또다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는 급락하였다가 다시 오르길 반복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등락을 거듭하는 가상화폐의 특성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 더구나 가상화폐 자체의 가치가 있는지조차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요즈음 ‘다단계 사기’는 예전처럼 치약이나 휴지를 파는 것이 아니라, 가상화폐를 판다. 설명을 아무리 들어봐도 와 닿지 않는 가상화폐여서 사기치기(?)에 더 쉬운 듯하다.

 가치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가상화폐는 투자의 대상인지, 투기의 대상인지 알 수 없다. 위 도민일보 기사의 제목은 ‘존버는 결국 승리?’다. ‘존버’는 무조건 투자해 놓고 긴 기간에 팔지 않는 ‘묻지마 투자’ 방식을 의미하는 조어다. 주식은 어떨까. 코스피 지수가 3,000선을 돌파하고 전 국민이 ‘동학개미 운동’을 벌이는 요즈음 주식은 가상화폐만큼은 아니지만 분명 과열양상으로 보인다. 부동산 규제,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소비의 감소 등으로 시중 유동성이 주식 등으로 흘러들어 갔다는 평가가 많다. 혹은 삼성전자 등 우리 기업이 코로나 사태에도 꽤 괜찮은 성적을 거둔 점이 주가에 반영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경제학자들 가운데 부자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속설이 있지만, 예외도 있다. 현대 경제학의 거두이자 자신의 이름을 딴 학파를 가지고 있는 20세기 최고 경제학자 케인즈가 대표적이다. 케인즈는 1920년대 미국 대공황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주식투자를 하여 큰 부를 쌓았다고 한다. 그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경제학자였으며 주식의 ‘가치투자’에 대해 강조하곤 했다. 기업의 가치를 냉정하게 판단하여 집중투자하는 방식이 그의 투자철학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저 유명한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라고 보았다. 투자는 이성의 원칙을 견지하여야 하지만 실제 충동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가와 가상화폐가 연일 최고점을 갱신하는 요즈음 투자는 ‘야성적 충동’과 ‘존버’가 답일까. 경제에 문외한인지라 주식과 코인 근처에도 가지 않지만 불현듯 ‘야성적 충동’이 일기도 한다. 수년 전 교도소에 있던 의뢰인은 출소해서 수십 배가 뛴 자신의 가상화폐를 처분했을까. ‘공짜 점심은 없다’는 또 다른 자본주의의 격언을 떠올리며 오늘도 묵묵히(?) 사무실로 출근을 한다.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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