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茶山)과 괴테 단상
다산(茶山)과 괴테 단상
  • 장상록 완주군농업기술센터
  • 승인 2021.01.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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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승문(弔蠅文), 말 그대로 파리를 조문하는 글이다. 그 중 한 대목이다.

 “아! 이 파리가 어찌 우리의 유(類)가 아니랴. 너의 생명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이에 음식을 만들어 널리 청해 와 모이게 하니 서로 기별해 모여서 함께 먹도록 하라.”

  글을 쓴 이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다. 글만 보면 분명 기괴하다. 정약용에게 현대적 위생 개념이 부족해서인가. 다산은 왜 이토록 파리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는 것인가.

  다산이 말하고 있는 파리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말과 글은 듣고 읽는 사람과 시대에 따라 미묘한 뉘앙스에서부터 근본적인 개념의 이해까지 차이를 불러온다. 다산과 동시대를 살았던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가 던진 질문도 평범한 독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다산도 생존해있던 1827년, 에커만(Johann Peter Eckermann)과의 대화중에 이렇게 말한다. “<안티고네>에는 내가 언제나 오점으로 여기는 구절이 하나 있는데 나는 어떤 유능한 문헌학자가 나타나서 그 구절이 나중에 삽입된 것이며 소포클레스가 쓴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주었으면 하고 바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네.”

  괴테가 소포클레스(Sophocles)가 쓴 것이 아닐 것이라 여기는 의문의 구절은 이렇다.

 “남편이 죽으면 다른 남편을 얻을 수 있고 자식을 잃으면 다른 남자에게서 태어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어머니도 아버지도 모두 하데스에 누워 계시니 과거에 태어난 오라비는 다시는 있을 수 없지요.”

  안티고네가 크레온의 명령을 거부하고 오빠인 폴뤼네이케스 시신을 매장한 동기에 대해 말하고 있는 이 부분은 분명 어색하다. 그래서 비논리적이고 기이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문헌학적이고 문학비평적인 부분은 전문가의 몫이지만 정서적으로 이해하는 부분은 독자의 영역에 있다. 안티고네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쩌면 그것은 파리의 죽음을 애도한 정약용을 바라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여전히 내가 그릴 수 있는 세계 속에 산다.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는 정약용에게 한 사람이 슬픈 목소리로 이런 걱정을 말했다.

 “호남의 풍속이 교활하고 각박한데 탐진(耽津)이 더욱 극심하다. 그대가 어떻게 견디겠는가.”

  흥미롭다. 오늘 누가 내게 이렇게 말한다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산이 살던 그 시대에서 지금 우리는 과연 무엇이 얼마나 변한 것인가. 분명 많은 것이 변해왔는데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궁극에 가까운 것이리라.

 이제 다산(茶山)의 답을 들어보자. “어허! 말을 어찌 그리 잘못하는가. 탐진 백성들은 벼 베기가 끝나면 농토가 없는 가난한 백성들이 곧바로 그 이웃 사람의 논을 경작하기를 마치 자기 전토처럼 하여 보리를 심는다. (중략) 아아, 참으로 인후한 풍속이다. 이들은 무회씨(無懷氏)의 백성인가 아니면 갈천씨(葛天氏)의 백성인가.”

 다산이 언급한 무회씨와 갈천씨는 중국의 이상적 군주다. 그들 치세에는 말하지 않아도 믿고 가르치지 않아도 교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다산은 자신의 말을 이렇게 맺고 있다.

  “살피기를 공평한 눈으로 하고 평가하기를 공정한 말로 한다면 그 누가 인(仁)이 되고 그 누가 적(賊)이 되겠는가.”

 우문현답(愚問賢答)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다산의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우리는 주변의 누군가에 대한 평가를 얼마나 공정한 말로 다하고 있는 가.

  파리의 죽음을 애도하는 정약용을 이해할 수 있는 단초도 바로 거기에 있다.

  다산과 소포클레스가 우리에게 제공한 낯설음에 대한 반응은 상식적이다.

 괴테가 말하는 의문도 그렇다. 삶은 그것에 대한 완결된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이르는 각자의 여정이 아닐까.

  여전히 내게 묻는다. ‘넌 왜 그런 글을 쓰나’

  먼 훗날 괴테와 같은 인물이 내 잡문에 대해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내 삶과 죽음은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하리.

 장상록 <완주군농업기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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