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아름다운 역사와 이야기를 지닌 518년 시간의 길 ‘왕릉가는 길’
저마다의 아름다운 역사와 이야기를 지닌 518년 시간의 길 ‘왕릉가는 길’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1.01.06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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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팔도 안 가본 곳이 없는 명불허전 답사 전문가 신정일 작가. 명색이 나라 안에서 제일 많은 길을 걸었다고 자타가 공인하고,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불러온 주역인 그가 우리 국토의 숨은 보석을 등한시했다는 자책마저 들게 되었다는 특별한 길이 있다. 바로, 서울 정릉부터 영월 장릉까지 조선 왕릉을 잇는 600km의 길이다.

 조선 왕릉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지만, 그 아름다움과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한반도에서 명당 중의 명당에 위치한 것이 왕릉인데, 가까이에 살면서도 그 가치를 등한시 해왔던 것이다. 지난해 가을 문화재청이 10여 년의 복원 노력의 결실로 ‘조선 왕릉 순례길’을 개방하면서, 이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조선 왕릉 순례길과 각각의 왕릉 내부 숲길을 걸어 볼 수 있다.

 때마침 발간된 ‘왕릉가는 길(샘앤파커스·1만8,000원)’을 펼치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례길과 마주할 수 있다.

 신정일 작가는 조선 왕릉 49곳을 하나하나 소개하며 130여 컷의 사진과 함께 왕실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간다. 서울 도심 속 선정릉, 태릉부터 파주 동구릉, 영월 장릉까지, 능, 원, 묘를 아우르는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우리 땅과 역사, 문화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된다.

 한반도 최고의 명당은 어떻게 선정되고, 거기에 잠든 수많은 왕과 왕비, 세자와 세손들에게는 어떤 가슴 찡하고도 슬픈 사연들이 있을까?

 태조의 건원릉은 고려 왕릉 중 가장 잘 조성된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정릉의 능제를 기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런데, 건원릉의 봉분에는 잔디를 심지 않고 억새를 심었다. 고향을 그리워한 아버지를 위해 태종이 태조의 고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다 덮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경종이 잠든 의릉은 묘비 명 그대로 크고 아름다운 무덤이다. 경기도 안산에는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신벌(神罰)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북성산 기슭에 있는 세종대왕의 영릉을 두고 풍수가들은 이름 그대로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땅에 피는 아름다운 꽃, 즉 명당 중의 명당이라 부른다.

 장장 516 페이지에 수록된 조선 왕릉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518년 조선왕조의 명장면과 하이라이트를 모두 감상한 것과 같다. 조선왕조에 관한 역사적 지식은 물론이고, 우리 땅에 대한 이해, 풍수 관점의 상식도 풍부하게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왕릉을 가건 공통점이 있다. 실크로드처럼 펼쳐진 아름다운 길이 있고 소나무, 참나무, 물푸레나무를 비롯한 온갖 나무들이 울울창창한 모습이다. 그 풍경은 작가는 물론 모든이의 가슴을 뛰게 만들 터다.

 신정일 작가는 “옛날의 현자들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겼을 때 숲속으로 들어가 자연의 소리를 들으면서 생각을 정리했다고 한다”며 “자, 어서 가서 걸으시라. 조선 왕릉 길을 걷는 시간 만큼은 세상의 삿된 욕심에서 벗어나 몸과 마음이 새털처럼 가벼워져 어느새 시인이 되고, 철학자가 되고, 천진난만한 어린이가 될 것이다”고 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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